인연이란, 지키고 소중히 할 때 더 큰 의미
인연이란, 지키고 소중히 할 때 더 큰 의미
  • 황선주 기자
  • 승인 2018.11.20 10: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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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로운 이익에 치중되지 않는 인연과 만남이 오래간다.

“진정한 인연과 스쳐 가는 인연을 구분해서 인연을 맺어야 한다. 진정한 인연이라면 최선을 다해서 좋은 인연을 맺도록 노력하고 스쳐가는 인연이라면 무심코 지나쳐 버려야한다.그것을 구분하지 못하고 만나는 모든 사람과 헤프게 인연을 맺어놓으면 필요한 인연을 만나지 못해 어설픈 인연을 만나 그들의 삶에 침해되는 고통을 받아야한다.
수많은 사람들과 접촉하고 살아가지만 인간적인 필요에 의해 접촉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주위에 몇몇 사람에 불과하고, 그들만이라도 진실한 인연을 맺어놓으면 좋은 사람을 마련하는데 부족함이 없다.
진실은 진실된 사람에게 투자해야 한다. 그래야 좋은 일로 결실 맺으며 아무에게나 진실을 투자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그 것은 상대방에게 내가 쥔 화투패를 일방적으로 보여주는 것과 다름없는 어리석음이다. 우리는 인연을 맺음으로써 도움을 받기도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피해도 많이 당하는데, 대부분은 진실없는 사람에게 진실을 쏟아부은 대가로 받는 일이다.” << 법정 스님의‘인연’중에서 >>


법정 스님의 인연이란 글을 접하게 되었다. 사회라는 곳, 그곳은 누군가와 끊임없이 소통과 배려로 인간관계를 맺어가야 하는 곳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인연을 만나고 헤어지면서 그 인연을 통해 때로 배우기도 하고 때로 후회하며 깨닫기도 한다.
누구나 살아가면서 수많은 환경에 노출되어 인연을 맺고 살아가지만 기자라는 직업은 특히 다른 직업보다 많은 사람들과 수시로 만나고 소통하며 인연을 맺을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신문, 잡지, 방송에 실을 기사를 취재하여 쓰거나 편집하는 사람이고 기사를 게재하기 위해 사람들과 교류하며 정보를 얻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발로 뛰는 것이다.


법률가는 법률가대로, 정치가는 정치가대로, 교육자는 교육자대로 그들이 가진 저마다의 직업적 매력이 있지만 기자는 지역사회의 어둠을 지적해 독자의 관심을 유발하고 그들의 판단을 유추해내는 역할을 한다는 데 매력이 있다.


취합된 정보를 바탕으로 사실에 입각한 기사를 써 보다 나은 사회가 되도록 하거나 잘못 없는 사람이 억울함을 당하지 않도록 돕기도 한다. 사실 게재를 통한 문제 제기로 보다 밝은 사회 구현에도 일조한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어떠한 인간관계든 소의(小義)를 버리고 대의(大義)에 중심을 두고, 사익(私益)보다 공익(公益)에 집중할 수 있는 인연이 많아야 한다는 것이다. 대의(大義)란 인류의 공익, 국가와 민족, 더 나아가 가족 친구 이웃의 행복을 위해 자신의 이익을 버리고, 정의로운 신념을 위해 생명까지도 버리는 것을 말한다.


반대로 소의(小義)란 개인의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 혹은 작은 이익을 위해 목숨을 거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일에는 대의와 소의가 있는데 소의를 위해 목숨을 거는 것은 아주 어리석은 일이다.


정보 수집을 위한 목적이 다소 변질되어 만남의 수단이 되고 대의가 아닌 소의로, 공익이 아닌 사익으로 인연을 맺게 되면, 상대편은 진실과 정보를 쉽게 꺼내 보이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만남은 형식적인 대화만 하다 마는 시간만 낭비하는 인연에 그치게 된다. 반대로 사사로운 이익에 치중되지 않는 진실한 만남은 오래가며, 오해가 있어도 금세 회복 가능한 소중한 인연이 된다.


우리는 사회를 살아가면서 때로 자신을 이롭게 해주는 인연과 만나게 된다. 반대로 내 의지와 상관없이 피해를 주거나 받고 상대편을 해롭게 하는 악연과도 마주치게 된다.
우리는 그것을 흔히 ‘우연’이라 칭하지만 어쩌면 ‘필연’일 수 있다.
‘네 탓이오’라는 마음에서 ‘내 탓이오’ 라는 마음으로 역지사지한다면 마음이 평온해진다.


수많은 인연 중 끝이 좋지 않았던 친구나 동료와의 인간관계를 통해 얻어지는 경험과 지혜…. 그것은 다시 자신을 되돌아보고 한 걸음 성장시켜 자신을 한 번쯤 반추해보는 자아성찰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어릴 적 맺었던 수많은 인연이 기억에 다 생생하지는 않지만 때로 고마웠던 인연이 문득 떠오를 때가 있다.


초등학교 입학 전 부모님과 함께 놀러 간 충북 화양계곡에서 튜브를 놓쳐 계곡물에서 허우적대던 나를 잡아 물에서 꺼낸 주신 어떤(?) 아저씨와의 인연, 중학교 1학년 시절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즐대는 실개천이 휘돌아나가고’라는 정지용 시인의 <향수> 작품을 가르쳐주신 국어 선생님과의 인연 등….


내 기억 속의 고마웠던 인연들은 시간이 흘러도 언제나 변함없는 소나무처럼 늘 그 자리에 좋은 추억으로 머물러 있다.


이제 과거의 인연은 추억에 담고, 현재의 인연을 충실히 하며, 앞으로 다가올 소중한 인연에 대해 준비하려 한다.
지금도 혹시나 밥을 굶으며 일하고 있지 않을까 걱정해주는 친구들과 맛있는 음식을 함께 먹자며 전화해 소소하게 내 삶을 챙겨주는 고마운 이웃과의 인연을 소중히 생각하려 한다.


사사로운 이익에 집착하여 인연을 맺지 않았음에도 그 친분을 오히려 악용하는 불운한 인연들을 대할 때, 마음을 다치지 않고 오히려 담대히 헤쳐나가려고 한다.


여성 기자라는 이유만으로 가끔 겪게 되는 불리한 상황을 슬기롭게 헤쳐나가, 나에게 주어진 시험지를 잘 풀어나갈 수 있는 능력과 지혜를 가져야 한다. 앞으로 어떠한 외압에도 평상심을 잃지 않고 대의를 위해 펜을 들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좋은 인연들을 통해 얻어진 그 용기는 살아가는 데 필요한 동력의 원천이 되며 삶의 멘토가 된다. 인연이 다하면 결국 흩어지지만, 좋은 인연이란 끝까지 지키고 그 인연을 소중히 할 때 더 큰 의미를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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