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어카’ 끄는 삶이라도 희망 잃지 말기를…
‘리어카’ 끄는 삶이라도 희망 잃지 말기를…
  • 황선주 기자
  • 승인 2019.04.08 13:5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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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의 이인편2을 보면
子曰(자왈) 不仁者(불인자)는 不可以久處約(불가이구처약)이며 不可以長處樂(불가이장처락)이니 仁者(인자)는 安仁(안인)하고 知者(지자)는 利仁(이인)이라는 구절이 나온다

 

‘어질지 못한 자는 오랫동안 곤궁한 데 처할 수 없으며 길게 즐거움에 처할 수 없으니, 어진 사람은 인을 편안히 여기고 지혜로운 사람은 인을 이롭게 여긴다’는 뜻이다. 여기서 약(約)은 기약하다, 곤궁, 검소하다로 해석된다.
어진 사람은 빈부가 그 사람의 성정을 좌우할 수 없고 가난한 데 거처하든 즐거운 데 거처하든 상관이 없다는 뜻이다.
한 예로 공자의 제자 안연은 집이 몹시 가난하였는데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삶을 산 것으로 유명하다. 공자는 안연의 집을 보고 이 같은 환경에서 오래 거처하며 도를 즐길 수 있는 사람은 나와 안연 정도가 있을 뿐이라고 말할 정도로 그를 높게 평가했다.

그런데 왜 소인(어질지 못한 사람)은 곤궁한 데 오래 거처할 수 없고 즐거운 데 장구히 거처할 수 없다고 했을까?
어진 사람은 마음에 내외(內外), 원근(遠近), 정조(精粗)의 간격이 없어서 전혀 외물이 그에게 영향을 미칠 수 없고, 반대로 어질지 못한 사람은 그 본심을 잃어서 오랫동안 곤궁하면 반드시 넘쳐서 감정을 억제하지 못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가난한 데 거처해 자신을 포기하거나 좌절하는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많아진다면 우리 사회는 병폐 속에 불행해져 갈 것이다.

지난 6일 밤 9시 40분경 선배와의 저녁 약속을 위해 이천터미널 부근을 찾았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안흥동 2차선 도로) 리어카를 밀고 있는 어르신을 피하려다 사고가 날 뻔 했다.

낡은 리어카에 폐휴지를 가득 싣고 손수레를 힘겹게 밀고 가는 70대 할아버지의 옷차림은 초췌했고 발걸음은 무거워 보였다. 게다가 검정색 계열의 옷을 입고 있어서 눈에 잘 띄지도 않았다. 다행히 순발력을 발휘해 사고는 피했지만 아찔했던 순간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내 머릿속은 ‘할아버지는 폐휴지를 주워 생활하실 만큼 힘드신 건가… 무슨 사연이 있을까…’, ‘운전이 미숙한 사람의 차량과 만나게 된다면 사고를 당할 수도 있을 텐데…, 교통사고라도 나면 어쩌나…”하는 생각뿐 이었다.
나의 기우(杞憂)이길 바라며 문득 곤궁하게 사는 사람들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 주변에 어려운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차가 질주하는 위험한 도로에서 리어카를 끌고 가는 어르신들의 모습은 이천, 양평,여주 뿐 아니라 전국 어느 지역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다.
생활고에 시달리는 어르신을 볼 때면 가끔 가슴이 먹먹해짐을 느낀다.


내가 아는 신체장애를 가진 어느 할머니의 폐휴지 리어카 주변에는 항상 주인을 지키려는 수호천사 강아지들이 따라다닌다.
술에 취한 어떤 아저씨가 리어카에 손을 대거나 하는 날이면 한발도 물러서지 않을 것처럼 용병이 돼 무섭게 짖어댄다. 
반대 입장에서 본다면 그런 개들이 위협적이고 얄미워 00탕(개인적으로는 보신의 음식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집에 넘기고 싶을 수도 있다. 하지만 ‘폐휴지를 실은 리어카’를 지키는 수호천사들이 어떤 이들에게는 자신의 삶마저 되돌아보게 할 만큼 감동적일 때가 있다.


삶이 무척이나 힘들고 고단하게 느껴지는 그 순간에도 죽음을 무릎쓰고 달려드는 그 수호천사 강아지들처럼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지켜야할 ‘리어카’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단순하고 흔한 리어카가 아닐 것이다.
그들이 지켜야할 책무와 유일한 희망, 그들이 가진 삶에 대한 애착 같은 것일 수도 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위험천만한 도로를 주행하는‘폐휴지를 실은 리어카’가 그 길을 가야만 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들에게 리어카는‘죽음보다 더 강한 삶에 대한 의지와 희망’일지도 모른다.  


‘어진 사람은 빈부가 그 사람의 성정을 좌우할 수 없고 집이 가난해도 안빈낙도의 삶을 즐긴 안연같은 인자(仁者)도 있다’며, 삶이 버거운 사람에게 안빈낙도나 유유자적한 삶을 강조하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도 작은 희망을 붙잡고 그것을 위안 삼고 살아가는 그들이 힘을 내 도약하기를 바란다.
안 좋은 일이 있으면 다시 좋은 일이 있고, 구름 뒤에는 햇볕이 내리쬘 준비를 하고 있다.
사람에 따라 말 한마디, 글 한 구절에 대한 깊고 얕음이 똑같지 않고 문제 해결 방식 또한 천차만별이다. 글을 읽고 해석하는 방식도 다를 것이다.
공자께서‘어진 사람은 마음에 내외(內外), 원근(遠近), 정조(精粗)의 간격이 없어서 전혀 외물이 그에게 영향을 미칠 수 없다’고 했듯이, 그들이 가난이란 곤경에서 좌절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뿐이다.
역경에 처하여 본심을 잃은 채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자포자기(自暴自棄)한다면 그 사람은 소인(小人)이 되는 것이다. 마음이 여린 사람이 아니라 어질지 못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가난한 상황 속에도 안빈낙도의 삶을 살았던 안연처럼 그들이 지금의 곤경과 가난을 헤쳐 나가, 다시 희망의 세상에 오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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뻑사마 2019-04-08 19:02:06
좋은글이네요.생각하게 만드는 기사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