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되기 전에 미리 대처하는 이가 지혜롭다”
“잘못되기 전에 미리 대처하는 이가 지혜롭다”
  • 황선주 기자
  • 승인 2019.04.15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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武王曰(무왕왈) 願悉聞之(원실문지)  太公曰(태공왈) 養男不敎訓(양남불교훈)이 爲一錯(위일착)이요 嬰孩不訓(영해불훈)이 爲二誤(위이오) 初迎身婦不行嚴訓(초영신부불행엄훈)이 爲三痴(위삼치)요

 

“무왕이 ‘그 것을 다 듣기를 원합니다’고 하자 태공이‘아들을 기르면서 가르치고 타이르지 않는 것이 첫째 잘못함이요, 어린 아이를 훈계하지 않음이 둘째 그릇됨이요, 처음 신부를 맞이하여 엄히 훈도하지 않음이 셋째 어리석음이다’고 말했다”는 뜻이다.
실(悉)은 모두, 남김없이라는 뜻, 영(嬰)은 갓난아이, 해(孩)는 아이가 어리다. 치(痴)는 어리석다로 풀이한다.
위의 글을 보면, 아들을 양육하면서 가르치고 훈계하지 않음이 첫째 잘못이라고 했다. 굳이 아들이라 한 것은 당시의 남존여비의 시대적 가치관을 반영한 것인데, 남녀의 사회적 활동이 차별이 없는 시대를 사는 오늘날, 자녀라는 개념으로 이해해야 옳을 듯 하다.
자녀를 귀하게 여기고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 나도 조카 에빈이와 윤재를 내 목숨과도 바꿀 수 있을만큼 사랑하고 있다.
그런데도 자식 농사에 성공한 사람과 실패한 사람이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태공은 교훈의 여하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자녀를 사랑하되 정에만 치우쳐 자녀 교훈을 소홀히 하면 자녀가 바른 사람이 될 수 없다.
한 자녀만 둔 가정이 많아 자녀를 금지옥엽(金枝玉葉)인양 키우다 보니 성인(成人)이 되어도 항상 어린애다. 자녀가 공공(公共) 장소에서 천방지축(天方地軸)으로 버릇없이 굴어도 자녀를 나무라는 부모가 드물다.
교사가 학생을 지도하는 것이 비위에 거슬리면 거칠게 반항하고 어떤 학부형은 왜 남의 자녀 기죽이느냐고 항의한다. 기자 또한 칭찬기사를 쓰지 않으면 곧바로 적이 되어버리기 일쑤다. 뭐든 지 듣기에 거슬리는 소리가 들리면 적이 되어 버리는 현실이 안타깝다.
자연과 동물과 함께 살아가는 시골 주택에 살다보니, 마당의 앵두나무, 왕대추나무, 복숭아 나무의 곁가지 쳐야하는 일이 많아졌다.
얼마 전 전지를 하는데, 그 도구의 쓰임새를 묻는 이가 있었다. 전지가위는 나무를 쓸모 있는 재목으로 키우기 위해 불필요한 곁가지를 치기 위한 것이다.  묘목을 기를 때 어려서 지주목을 세워 주거나, 곁가지를 쳐야 올바로 자라나는 것처럼 아이 또한 잘 해주고 바로잡아줘야 심성이 바로 자란다.
비뚤어지게 자란 굵은 나무는 뒤늦게 아무리 지주목을 세워도 소용이 없다.
어릴 때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아이는 커서 남에게 사랑을 베풀고, 사랑이 부족한 아이는 시기와 질투심이 큰 아이로 자란다고 한다.
시기하던 아이는 성인이 됐을 때 보다 잘난 사람이라고 느끼면 이간계를 써서라도 상대방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남에게 심어주어, 나 이외의 다른 사람과의 접촉을 차단시킨다.
반면, 제대로 사랑받고 교육받은 아이는 자신보다 잘난 사람을 진심으로 축하해주며, 좋은 사람들과의 인연을 연결해주기도 하고 진심으로 기쁨을 함께하려 한다.
우리가 성인이 되어 사회를 살아가면서 설령 그 것이 잘못된 일이라 하더라도 묵인하고 넘어가는 비인간적인 사회를 가끔 마주하게 된다.
이것은 어쩌면 아이의 특성과 발육상태에 따라 적절한 시기와 교육 방법 교육내용이 달라야 하는 조기 교육이 시기성 적절성에 맞게 이루어지지 않아서일 수도 있다.
무슨 일이고 처음 잘 가르치지 않고 후에 바로잡으려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지혜자(知慧者)는 일이 잘못되기 전에 미리 대처하는 사람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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