찻사발 만들다 차(茶)매력에 푹 빠진 ‘이도다완’ 명인
찻사발 만들다 차(茶)매력에 푹 빠진 ‘이도다완’ 명인
  • 정해균 기자
  • 승인 2019.11.25 17: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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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심인구 대표(우현도예연구소)

대한민국 최고급다례사 자격…후학양성과 고려백자 재연 노력

우현(牛玄) 심인구(58) 우현도예연구소 대표

우현(牛玄) 심인구(58) 우현도예연구소 대표는 이천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도예와 접하면서 자연스럽게 도예가의 길을 걷게 됐다.

20대에는 잠깐 안정적인 공무원 생활도 해봤지만, 예술에 대한 갈급함으로 어려서부터 놀이터였던 도자 공방을 직접 운영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주로 옹기를 만들었다. 옹기는 단순히 그릇의 형태로 독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황갈색의 유약을 입힌 질그릇을 총칭하는 개념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항아리로만 알고 있어 생활 용기인 옹기를 널리 보급하고자 내열성이 우수하고 전자레인지 등에도 사용 가능한 ‘황토내열용기’를 개발했다.

1999년 황토내열용기 특허를 등록하고 이 제품이 대박이 나면서 안정적인 작품활동에 매진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이천시 백사면 도립리에 소재한 우현도예연구소는 4동의 건물이 들어서 있는데 작업실을 겸한 창고가 있고 안으로 들어가면 1층은 작업실 2층은 전시실로 사용하는 건물이 있으며, 건물 뒤편 정차처럼 지은 손님맞이 다도실인 ‘운유대(雲遊臺)’라는 불을 때는 황토벽돌 건물이 한 동이 있다. 이 모든 건물은 그가 부지를 구입 후 직접 하나하나 손수 지은 건물이다.

심 도예가는 이곳에서 찻사발과 달항아리를 전문으로 만들고 있다.

찻사발인 ‘이도다완’을 많이 만들고 조선의 전통 달항아리를 장작가마를 이용해 만드는데 인공적인 색상은 쓰지 않고 모두 자연적으로 불이나 흙의 색으로만 색감을 나타내는 자연적인 작품을 만들고 있다.

또한, 찻사발을 만들다 보니 차 도구를 만드는 사람이 차를 모르면 되겠나 싶어서 차를 마시는 예의범절인 다례(茶禮)에 관심을 가지고 다법 연구, 역사 등 차에 대해 매우 깊이 있고 다양한 연구까지 하게 됐다.

그 결과 대한민국 최고급다례사 자격을 취득하고 수년간 서울 운현궁에서 ‘궁중 다례 시연’ 왕을 도맡아 진행했으며, 명지대학교 산업대학원에 차문화학과를 개설해 학생들에게 차에 대해서 가르치기도 했다.

“30대 때 처음 차를 접하고 그 매력에 빠져 인생이 달라졌다”고 말하는 심 도예가는 이천, 여주 등 지역 초등학교 학생들이 도자기 만들기 체험을 오면 단순히 찻잔을 만드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자신이 만든 찻잔에 차를 마실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운영해 아이들이 어릴 때 일찍 차 문화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준다.

특히 그는 지난 2015년 도자기 ‘다기’ 부문 명인에 선정됐다. 우리나라에는 기·예능의 대가들을 무형문화재 기예능보유자, 명장, 명인 등으로 구분한다. ‘기예능보유자’는 국가에서 인정하는 그 분야의 최고인 사람을 일컫는 말이며, ‘명장’은 공무원들이 심사를 거쳐 임명하는 장인을 말한다. 그에 비해 ‘명인’이란 최고 권위에 있는 예술가들이 심사해 선정하는 최고의 실력자를 칭한다. 명인은 전문분야에서 20년 이상 노력한 예술인들에게 자격을 부여하며, 까다로운 4번의 심사과정을 거쳐 선정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한국예술문화명인 5기 회장을 맡고 있으며, 도예 작가들의 국내외 전시를 돕는 국제평화예술연합회 회장, 일본오사카갤러리 이사장직을 맡고 있기도 하다.

이제는 개인적인 작품활동에 그치지 않고 대한민국 도자 산업의 발전을 위해 후학을 양성하고 도자 흙 연구에 전념하고 있는 심 도예가는 최근 ‘용인서리고려백자요지’ 와 관련해 고려백자를 재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난 2000년 대학원에서 도자기를 공부할 당시 우연히 용인 서리 가마터가 발견됐다는 소식에 흥미를 느끼게 돼 그때부터 고려백자에 관심을 가진 그는 제대로 된 고려백자 유물은 없는 반면, 엄청난 파편이 발굴돼 역사학적으로 매우 높은 가치가 있다고 설명했다.

용인시에 따르면 용인시 처인구 이동면에 있는 ‘용인 서리 고려백자요지’는 고려전기 백자를 굽던 가마터로 사적 제329호로 지정됐다. 1960년대 발견됐는데 고려 초기의 백자요지로 9세기 중반 무렵부터 12세기까지 청자와 백자를 생산했던 곳으로 밝혀졌다. 발굴조사 결과, 이곳에는 거대한 퇴적층이 있는데 퇴적층에서 가마의 유구와 백자, 청자, 도기 조각 등과 작업에 관계되는 건물터도 조사됐다.

가마는 벽돌로 된 가마와 진흙으로 지은 가마가 확인됐는데, 벽돌 가마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밝혀진 것이고 진흙 가마는 길이 83m의 대형가마로, 출입구가 27개나 확인됐다. 출토유물로는 그릇이 많으며, 해무리굽을 가진 대접(완)이 대부분이다. 제작 시기는 10세기 후반부터 12세기 전반까지로 추정되고 있다.

이 가마터는 고려백자의 기원과 발전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가마터로 통일신라 말기부터 고려 전기에 이르는 도자역사 연구에 획기적인 정보를 제공했으며, 용인시는 앞으로 3천억 원을 투자해 복원한다는 계획이다.

심인구 도예가는 “인근 용인시는 이곳을 발판으로 도자 사적지로서의 부흥을 꾀하며, 이미 혁신교육의 일환으로 용인시 모든 초등학교에서는 도자기 수업을 의무적으로 실시하고 있고 용인대학교에도 도자기 학과가 개설된다고 들었다”며, “내 고향 이천시는 유네스코 창의 도시이자 역사와 전통이 있는 도자도시임에도 오히려 갈수록 도자 산업과 도자기 축제 등이 퇴보하는 것 같아 도예인의 한 사람으로서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천에 도예고가 있지만, 더 많은 학생들이 도예를 접하고 배울 수 있는 인프라가 조성되고 기성 도예인들도 한발 양보해 도예 작품을 제대로 판매해줄 수 있는 도소매인과 상생을 통해 좀 더 일반 소비자들이 손쉽게 도예 작품을 접할 수 있는 시장이 되살아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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