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가 무너지지 않으면 관계는 회복된다”
“신뢰가 무너지지 않으면 관계는 회복된다”
  • 황선주 기자
  • 승인 2020.06.29 17: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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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이 소인인지 군자인지 구분하는 것은 유권자 몫

문득 서로 파벌을 이뤄 정권을 다투던 붕당정치를 생각하다 사람의 인상과 느낌에 생각이 이르게 됐다.
퉁명스러운 말투와 날카로운 눈빛을 뿜어내는 사람이지만 마음이 따듯한 사람, 부드럽고 온화한 말투와 환한 미소를 보이지만 속에는 이기심과 사심이 가득한 사람 등 등….


어떤 사람과 관계를 맺든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 인간성, 외모, 성격, 성향, 직업 등 사람을 대할 때면 누구나 나만의 기준이 있을 것이다. 나의 개인적 기준은 그 사람의 인간성과 나에 대한 신뢰도와 믿음이다. 정치에도 신뢰와 믿음이 필요하다.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 곧 정치이기 때문이다.

신뢰와 믿음이 쌓이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믿음은 순식간에 무너지기도 한다. 아홉 번을 잘 하다가 하나를 잘못하면 나쁜 사람이 되고, 어제의 내 편이 오늘의 적이 되기도 한다.
나를 그토록 칭찬하던 이가 한 가지 일을 계기로 갑자기 나를 흠집을 내기 시작한다면 왜일까.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자신의 이익과 맞지 않아서이거나 질투의 감정이 일어나서 일 가능성이 높다.
그 관계가 진정성으로 맺어진 것이 아니라 이익으로 맺어졌다면 더 쉽게 그런 일이 일어날 것이다. 위기 속에서 관계가 보여주는 진심이나 민낯이 드러난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믿음과 신뢰로 하나의 붕(朋)이 만들어진다. 붕들이 모여 파벌을 이루고 권력을 다투는 것이 정치다. 그런데 이 정치가 붕당의 이익을 우선하던 것으로 변질되면 폐해가 심각하게 나타난다.
조선시대 붕당정치가 대표적인 예다. 붕당정치는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세력끼리 칼이 아닌 말을 통해 갈등을 해결한다는 점에서 발전된 정치행태라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당쟁을 통한 권력 장악으로 목적이 변질되면 심각한 부작용을 낳게 된다. 붕당정치의 변화를 현대 정치에 비춰보면서 유사한 점이 많다고 느끼게 된다. 목적을 위해 사활을 거는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오묘하게 닮아있다.


조선시대에 기성 관료집단인 훈구파를 비판하는 사림파가 대두하며 양자의 충돌인 사화가 발생했다.
사림파가 정권을 장악한 이후 붕당정치가 태동했고 민생과는 관련 없는 권력을 잡기 위한 문제로 각 붕당이 지속적으로 반목하며 국력을 약화시켰다.


최근 치러진 한 지방의회 의장단 선출 과정에서 자당 소속 의장 후보에 대한 불신으로 같은 당 의원이 투표 전 모두 퇴장하는 초유의 사태가 빚어졌다.
이들은 의장 후보가 공익과 당론보다 자신의 목적과 이익을 앞세워 당의 의사에 반하는 행동을 했다고 판단, 투표에 불참하기로 결정했다.


결국 이 의장 후보는 타당과 무소속 의원의 만장일치 지지로 의장에 선출됐다. 이 의장도 자신의 이익과 욕심 때문에 출마를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만의 명분이 있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투표에 참석한 의원 전원의 찬성표를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익과 욕심만 앞세우는 정치인은 없을 것이다. 만약 그런 정치인이 있다면 그는 국민을 진심으로 보듬을 수 없을 것이다. 공감 능력도 떨어질 것이고 겉으로는 공익을 하는 것처럼 연극을 하지만 속내로는 욕심을 합리화하고 정당화할 것이다. 정치든 개인이든 다름을 인정하고 신뢰가 무너지지만 않는다면 그 관계는 언제든 회복될 수 있다.


반면 신뢰와 믿음이 없다면 그 관계는 오랜 시간이 걸려도 좀처럼 회복되지 않을 것이다. 다양한 의견이 표출되는 과정에서 생기는 갈등은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다.
하지만 상대방에 대한 믿음과 신뢰를 깨뜨리면서까지 자신의 목적을 달성했다면 진정한 내 편은 없게 될 것이다.


가짜가 아닌 진짜의 마음을 얻는 것이 중요하다. 믿음을 가볍게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어떤 정치인이 군자인지 소인인지 구분하는 일은 전적으로 유권자인 우리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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