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신(所信)
소신(所信)
  • 황선주 기자
  • 승인 2020.07.27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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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선주 기자

소신'이라는 말은 어떤 일을 할 때 자신이 옳다고 믿는 대로 행동하는 것을 말한다.
주변을 살펴보면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자신의 소신을 지키며 꾸준히 노력하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대전에 내가 존경하는 여자 목사께서 살고 계신다. 그 분의 소임(所任)은 사람과 동물을 돕는 일이라고 했다. 그것이 하나님의 사명이기도 하고 자신의 소신이라고 하셨다.
그 분은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한결같다.
항상 따듯한 미소로 나를 맞아주시는 모습도 그러하지만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들을 변함없이 도우며 살고 계신다.
그리고 무책임한 사람들로부터 학대받고 버려진 유기견 80마리를 정성으로 돌보고 계신다. 대학 교수인 목사의 남편은 목사에게 ‘이제는 그만 편하게 살라’고 하시지만 그의 소신은 예나 지금이나 언제나 변함이 없다.


얼마 전 이재명 경기지사는 “국민에게 약속을 했으면 지켜야 한다”며 “내년 4월 치러지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 후보 공천을 하지 않는 게 맞다”는 소신 발언을 해 화제가 됐다.
그는 “장사꾼도 신뢰를 유지하려고 손실을 감수한다”면서 “정치는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렇다. 말에 있어 그 책임감과 신뢰는 참으로 무겁다. 신뢰를 가볍게 생각하는 사람은 믿을만한 사람이 못되며, 그 사람은 소신이 없는 가벼운 사람일 뿐이다. 인생에 있어 고귀한 것은, 진실한 사람과 만나는 일, 그리고 어려움을 겪은 뒤 빛을 발하는 사람 같은 소신 있는 사람과 함께 하는 일이다. 정치인이든 언론인이든 법조인이든 자신의 소신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 소신을 지키기란 참으로 어려워서 그런 사람을 만나기가 어렵다. 소신 있는 사람이 그리워지는 요즘이다.


얼마 전 강원대 교수로 재직 중이던 한 전직 언론인이 세상을 떠나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슬퍼했다고 한다. 그의 죽음이 유독 안타까웠던 것은 그가 정치 권력의 외압에 굴하지 않은 언론인이자 학자였기 때문이다.


‘곡학아세’와는 뚜렷이 구분되는 그의‘소신’으로 남은 사람들에게 아름답게 기억될 것이다. 그런 사람들의 삶을 배우고 올바른 소신을 만들어야 한다.
기자로서의 ‘소신’은 중립 지대에서 여야에 흔들림 없이 자신의 기사를 써 내려가는 것이다. 돈이 목적이나 수단이 되어서는 안된다.
 ‘금전의 유혹’에 계획적인 나쁜 기사를 준비했다가 마치 물건 사고팔 듯 조건을 걸어 기사를 쓰면 안 되는 것이다.


하지만 여러 가지 상황으로 정론직필하기가 쉽지가 않은 것 또한 사실이다. 정치 권력에 순응하기만 한다면 더 이상 언론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면서, 때로 여러 가지의 상황으로 소신 있게 기사를 써 내려가지 못하는 것도 현실이다.
그러나 소신과 고집은 다르다.
나의 소신이 다른 이에게 행여 ‘아집’이나 ‘고집’은 아닌 지 분명하게 분별해야 한다. 때로 소신 있는 행동은 자칫 원하지 않는 피해를 안겨주기 때문이다.
소신과 고집을 혼동하면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하거나 좋지 못한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소신은 때론 자신의 안이함을 추구하고 잘못에 대한 반성 없이 비겁함에 대한 변명이 되기도 한다.


나는 ‘Never’라는 말과 ‘Forever’라는 말을 가급적 쓰지 않는다.
절대란 말과 영원이라는 말은 강조하기 위해 만들어진 단어일 뿐,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진영 논리에 빠져 누군가와 정치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보면 ‘절대’라는 용어가 자주 오간다.
“절대 아니야. 절대 그런 일은 없어” 이런 말들이 오간다.
하지만 절대라는 말은 그들의 고집스러운 주장일 뿐이다. 소신이 아닌 고집이다.

영원이란 말 또한 그렇다.
여름이 가면 가을이 오고 가을이 가면 겨울이 오는 것이 자연의 순리다. 어떠한 생명이든 유한한 존재인데 어떻게 영원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물과 구름 바람의 흐름처럼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바뀌는 것이 당연한 이치고 자연의 순리이다.
절대 그러하지 않는 것과 영원한 것이라고 믿는 것은 자신의 고집일 뿐이다.


그리고 소신이 없는 사람들의 특징 중 하나가 용기 부족과 책임전가이다. 자신의 의견을 그대로 전하지 못하고 애둘러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직접적인 전달보다는 간접적인 방법을 택한다.
그것이 책임을 면피할 수 있는 안전한 삶의 방편이라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자신의 잘못과 실수를 인정하면 되는데 타인에게 책임을 전가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그 또한 소신이 없는 사람들이다.
소신이란 자신이 한 말을 지키고 믿는 바에 따라 실천하는 것이다. 소신은 시간이 지난 후 여러 사람으로 하여금 신뢰를 얻게 한다.


비록 시간은 걸릴지 몰라도 아름다운 꽃을 피우기 위해 그 추운 겨울을 이겨내는 나무처럼. 땅속의 뜨거운 열과 강한 압력을 오랜 시간 견디면서 만들어진 광물처럼.

겨울이 지나 봄이 올 것이라는 믿음으로 결실의 꽃을 피워내는 것처럼.

소신은 그렇게 때로 인내와 기다림을 필요로 한다.
‘소신 있는 자’ 우리 사회에서 반드시 필요하다.

나는 진정 소신 있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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