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빼앗긴 국보급 문화재 ‘이천오층석탑’

100년 넘도록 아직까지 고향에 못 돌아와 2008년 범시민운동으로 환수 본격추진 환수위원회, 고군분투속 협상 난항

2018-11-12     정해균 기자

 

이천오층석탑이 1918년 일본으로 넘어가 100년이 지난 아직까지 귀향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10월 24일은 국보급 문화재 ‘이천오층석탑’이 한국 인천항에서 일본으로 간지 정확히 100년이 되는 날이다. 또한, 올해는 2008년 8월 이천 이원회 등 시민단체 22개 단체가 참여해 ‘이천오층석탑 되찾기 범시민운동추진위원회’가 결성식을 가지고 공식적인 시민운동의 시작을 대내외에 선포한지 10주년을 맞은 해이기도 하다.
환수위원회는 2008년부터 석탑을 가져간 일본 오쿠라 문화재단과 석탑 반환 협상을 벌이고 있지만 반환하겠다는 답변을 아직까지 듣지 못하고 있다. 더욱이 최근 들어 냉각된 한일관계는 협상 분위기를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으며, 시간이 지날수록 수수방관하는 정부와 이천시민들의 옅어진 관심으로 협상의 전망은 결코 낙관적이지 못한 상황이다.

이천오층석탑의 역사적 배경

 

환수위에 따르면 현재 일본 도쿄의 오쿠라 문화재단이 보관하고 있는 이천오층석탑은 6.48m의 규모의 아름다운 조형미를 자랑하는 국보급의 가치를 가진 석탑이다. 제작 연대나 유래를 확인할만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으나 전문가들의 견해에 따르면 이천오층석탑의 제작양식이 “신라시대 석탑의 특성과 고려시대 석탑의 특성을 함께 보이고 있다”고 한 것으로 보아 조성 된지 1천여 년은 족히 됐을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을 뿐이다. 이천오층석탑과 관련된 거의 최초의 기록으로는 조선총독부의 지시로 고적조사위원회의 이마니시 류가 1916년 9월 2일~13일에 광주, 이천, 여주지역의 유물을 조사하고 작성해 1918년에 발간한 유물유적조사보고서의 기록이다. 보고서에 “망현산 기슭 이천향교 서남쪽으로 인접해 있는 약간 높은 대상의 언덕 위에 두 개의 석탑이 마주 보고 있었는데 하나는 총독부박물관으로 옮겨 갔다. 총독부박물관으로 이전해간 탑지를 시굴해 본 결과 화염문이 들어있는 와편(기와조각)을 찾았는데, 석탑의 건립이 사찰의 건립보다 뒤에 이루어졌고 사명 및 건립연대는 알 수 없다”고 기록됐다.

 

이천오층석탑이 이천 땅이 아닌 바다 건너 일본의 도쿄로 옮겨지게 된 비극의 시작은 지금으로부터 약 10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본은 1910년 불법적 한일합병 후 5년이 지난 1915년 자신들이 조선을 발전시킨 공적을 만천하에 알리겠다며 산업박람회인 조선물산공진회를 개최한다. 그리고 조선왕권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경복궁에 박람회장을 꾸미고 전국의 우수한 문화재를 모아 약탈해 갔다.
오쿠라 기하치로(大倉喜八郞, 1837~1928)는 을사늑약 이전부터 조선에 들어와 대규모 토목, 광업, 은행, 건축사업 등을 통해 막대한 이익을 챙긴 인물이다. 그는 경복궁 해체 사업에 관여하면서 조선의 왕세자가 거처하며 왕이 되기 위해 공부하던 ‘자선당’을 일본 도쿄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통째로 뜯어가 ‘조선관’이라는 이름을 붙여 수집한 문화재들을 전시한다. 1917년에는 재단법인 오쿠라슈코칸(大倉集古館)을 설립하고 1918년 5월 정식으로 개관한다. 이는 일본 최초의 사설미술관으로 개관 당시 미술품이 3천692점이었고 서적이 1만5천600여 권에 달했다고 한다. 1918년 7월에는 총독부의 하세가와 총독에게 일본으로 뜯어간 자선당(조선관)과 어울릴 조선의 문화재로 평양 정거장 앞에 있던 7층 석탑의 반출을 요청한다.
그러나 조선총독부는 보는 눈이 많아 부담스러워 평양석탑의 반출을 허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오쿠라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던 그들은 1915년 조선물산공진회 개최 당시 이천 향교 근처에서 경복궁으로 옮겨 놓았던 이천오층석탑을 사진과 함께 추천했고, 오쿠라 측이 이에 응하게 된다. 오쿠라슈코칸이 석탑 양도에 관한 정식 요청서를 조선총독 앞으로 제출하고, 총독부 고적조사위원회는 회의소집도 생략한 채 서면결의만으로 형식적인 절차를 거쳐 1918년 10월 24일자로 즉각 승인, 반출 허가를 해주게 된다.

이천오층석탑환수위 구성 범시민운동 전개

순회교육

 

1949년 7월 대한민국 정부는 맥아더사령부를 통해 슈코칸 정원에 남아 있던 석탑에 대한 반환을 요구했으나 성사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후 1965년 체결된 한일협정을 위한 사전 회담 중에는 이천오층석탑이 반환 문화재 목록에 포함돼 협상이 이루어지고 있었으나, 일본 측이 “정부가 소유권을 가지고 있는 문화재가 아니라 오쿠라 슈코칸이 소유권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를 들어 최종 반환문화재 목록에는 빠지게 됐다. 이천오층석탑이 세상의 관심을 다시 받게 된 것은 일본의 교민을 위한 한글잡지인 ‘월간 아리랑’ 1996년 1월호에, ‘슈코칸 정원을 장식한 30여점의 유물들 가운데 11점이 한국문화재’라는 기사가 나고 이 기사를 서울신문이 인용 보도하면서 알려지기 시작했다.
2007년 10월 ‘이천시 지역문화정책의 방향찾기’에 대한 토론회가 개최돼 이천의 지역문화 발전과 약탈문화재 환수운동에 대한 발제와 토론이 이어졌으며, 2008년 3월에는 이천의제21, 이천문화원, 이천예총, 이천YMCA, 이천환경운동연합, 이원회가 모여 (가칭)‘이천향교오층석탑 되찾기 범시민운동준비위원회’를 구성해 ‘이천향교오층석탑 반환을 위한 시민 토론회’를 개최한다. 이어 이섭대천문화제 기간 중 ‘약탈문화재 사진전시회’를 열고, 교민 김창진씨와의 간담회를 거쳐 2008년 5월 14일~16일에는 관계자들이 일본 도쿄를 방문해 이천오층석탑을 직접 살펴보고 돌아온다. 2008년 6월 25일 범시민운동 준비위원회를 구성하고 준비위원장에 이상구 당시 이천문화원장을 선출했고 이천시의회 방문, 설봉산별빛축제에서 약탈문화재 사진전 개최 등 이천시민의 관심을 이끌어내기 위한 홍보활동을 펼친다. 8월 16일에는 22개 단체가 참여해 ‘(가칭)망현산오층석탑 되찾기 범시민운동추진위원회’ 창립을 기념하는 세미나를 세계도자센터에서 개최하고, 설봉공원 대공연장에서 결성식을 통해 공식적인 시민운동의 시작을 대내외에 선포했다. 2008년 9월 이상구 상임위원장이 공식적으로 오오쿠라 슈코칸 관계자를 만났으며, 임시총회를 열어 그동안 ‘망현산오층석탑’, 또는 ‘향교방오층석탑’으로 불리웠던 석탑의 이름을 ‘이천오층석탑’으로 확정했다.
2009년 5월에는 이천오층석탑이 돌아오면 세워질 자리를 이천아트홀 앞 광장에 마련했다. 또한 이천오층석탑의 정확한 보존상태를 파악하기 위해 국내의 석탑 전문가들을 일본에 파견했다. 이후 환수위 참여단체는 33개로 늘어났고 이들을 중심으로 ‘이천오층석탑 환수를 위한 10만 명 서명운동’에 돌입해 2009년 8월 이천시 인구의 절반이 넘는 10만 명의 서명을 받아내는 것을 목표로 시작된 서명운동은 1년여 만인 2010년 6월께 10만9천17명의 공식집계로 목표를 초과하는 성과를 올리며 각종 언론에 조명을 받았다.
국내에서 이천오층석탑 환수운동과 해외 반출 문화재에 대한 관심이 지속적으로 높아지자 마이니치, 아사히, NHK 등 일본의 언론들도 관심을 표명하며 취재에 나서 관련 소식을 일본에 전하기 시작한다.
환수위는 지금까지 매년 수천 명이 모인 탑돌이 행사와 사생대회 및 백일장을 개최하면서 이천오층석탑환수염원을 다짐하며, 자라는 미래 자녀들에게 문화재를 보호하는 환수의식을 고취시켰다. 한국과 일본을 번갈아 가며 행한 국제심포지엄을 통해 민간 교류를 추진했고, 한편으론 ‘한국조선문화재반환문제연락회의’라는 모임의 일본 활동가들과 꾸준한 연락을 취하며, 일본에 이천오층석탑환수의 당위성을 주장해 왔다.
지난 2017년에는 이천오층석탑이 일본으로 반출된지 100년이 되는 2018년에 다시 돌아온다는 희망을 기대하는 소설책인 ‘그대 돌아오는 길’이 발간되기도 했다.
특히 환수위는 매년 3~4차례 일본을 방문해 오쿠라 문화재단 이사장을 만나 100년 전 오쿠라 기하치로가 물질에 가치를 두고, 한반도와 이천시민에게 피해를 주었다면 현재를 사는 후손들은 한국과 일본의 상호 발전하는 미래에 가치와 관심을 가지고 판단해 달라고 요구하면서 협상을 진행해 왔다.

이천오층석탑환수 운동의 현실과 당면과제
그러나 일본 오쿠라 문화재단은 위안부 문제, 독도 문제 등 한일관계가 원활하지 못하고, 이천오층석탑을 반환하고 싶은 마음이 있더라도 만약 석탑을 아무 대가 없이 반환하면 이것이 선례가 돼 다른 박물관에 피해를 입힐 것이라는 등 거세게 반발하는 동 업계 박물관협회의 반응 때문이라며 난감을 표하고 있다.
다만 2014년 오쿠라 문화재단측이 ‘영구임대 방식’의 반환 협상을 제안하면서 실마리를 찾았다. 당시 오쿠라 문화재단측은 “오층석탑과 비슷한 가치의 작품과 맞바꿀 용의가 있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하지만 최근 반환에 긍정적인 입장을 낸 오쿠라 문화재단 이사장이 교체되면서 빨간불이 켜졌다. 당장 오쿠라 재단 이사진이 부정적인 입장으로 돌아섰다. 석탑이 재단 소유이기 때문에 이사진 동의가 필요하다. 가장 중요한 점은 오쿠라 재단과 반환협상이다. 반환을 위해선 재단 이사회 동의가 필수적이다.
문제는 환수위 위원 중 교수 등 협상을 풀어갈 전문가가 없다는 점이다. 일일이 찾아다니며 자문을 구하는 실정이다. 국가가 나서 수탈문화재를 찾기에도 어려운 상황에서 민간 시민단체가 재벌 기업과 협상을 벌이긴 힘겹다. 오쿠라 문화재단은 일본 재벌 순위 10위 내에 있는 대기업이다. 이를 해결할 전문가 구성 등 이천시의 적극적인 행정 노력이 필요하지만 담당 직원은 2명에 불과하다. 시 문화재 전반을 담당하는 2명의 직원은 이천오층석탑과 관련해 일본어 통역 정도 도움을 주는 역할만 하고 있다. 환수위는 한정된 예산 탓에 교수, 변호사 등 전문가 섭외도 어려워 재벌 재단과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다.
현재 이천오층석탑은 오쿠라 호텔 재건축 공사로 인해 지난 2015년 4월 해체돼 자체 수장고에 보관중이다. 오쿠라 호텔이 완공 기간을 2019년까지로 계획하고 있어 향후 이천오층석탑의 미래가 불투명하다. 석탑이 해체된 지금이 반환할 최적의 타이밍이지만 이 기회를 놓치고 다시 신축 호텔 내에 전시되면 반환은 더욱 힘들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천오층석탑환수위원회 관계자는 “전문가 구성 등 조속한 환수를 위한 다양한 지원이 필요하지만 여러 가지로 어려운 상황은 사실이다”며, “그러나 문화재의 주인은 현세대인이 아니라, 미래 후손의 몫이다. 환수에 대한 결과도 중요하지만 환수를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한 것도 뜻있는 값진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서 “시민들의 관심도 처음보다 많이 줄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반드시 반환을 이끌어 내겠다”면서 “부정적인 의견보다는 환수운동이 중단 없이 꾸준히 전개해 나갈 수 있도록 이천시와 시민 모두가 이해해주고 격려해 주시길 바란다”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