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 최고의 명주 꿈꾸는 연대리영농조합법인 ‘여민락주’
여주 최고의 명주 꿈꾸는 연대리영농조합법인 ‘여민락주’
  • 새연합신문
  • 승인 2018.11.20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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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가양주 기법으로 100일간 숙성 발효시킨 정성 담긴 우리 술
여민락주  이무권 대표(좌측 첫 번째)와 연대리영농조합법인 조합원들이 여주 최고의 전통 명주를 만들겠다며 힘차게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여민락주 이무권 대표(좌측 첫 번째)와 연대리영농조합법인 조합원들이 여주 최고의 전통 명주를 만들겠다며 힘차게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정해균 기자)  우리 조상들은 오직 쌀과 누룩만으로 막걸리를 담갔다. 가양주라 해서 집집마다 특색 있는 술을 담가 귀한 손님이 오면 대접하거나 명절 차례상과 제사상에 올리곤 했다. 제대로 된 막걸리는 쌀로 빚지만 포도 같은 과일 향이 나기도 한다. 집에서 담근 막걸리는 주부의 솜씨와 손맛에 따라 맛이 달라지며, 지역 특산품을 더해 색다른 맛을 내기도 했다.


‘여민락주’ 생산법인 연대리영농조합법인(대표 이무권)은 이러한 가양주를 전국 최고의 맛과 품질로 인정받는 진상미 여주쌀을 이용, 순수 전통기법으로 술을 빚어 여주지역 대표 명주로 새롭게 발돋움하며, 세간의 관심과 화제를 모으고 있다.

 

‘여민락주’는 지난 5월 열린 대한민국 국제요리대회에서 전통주 부문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상(대상)을 받아 이미 뛰어난 맛과 품질에 대한 검증을 마쳤다.


가남읍 연대리는 해마다 음력 1월 3일 연대산에서 한 해 마을주민의 안녕과 풍년 농사를 기원하는 산신제를 지낸다. 구전에 따르면 이 전통의식은 수백 년째 전해 내려오고 있으며, 마을의 대표인 이장은 제를 올리기 3일 전부터 집에 금줄을 매고 두문불출하다가 제를 올리는 날부터 밖으로 나갈 수 있다고 한다.

산신제 당일, 마을주민들은 찬물로 목욕을 하고 수퇘지 한 마리를 잡아, 연대산 큰 바위 밑으로 집결해, 제관과 축관이 향로와 초를 밝히고, 술잔을 채운 후 절을 올리고 축문을 읽은 후 소지한다. 의식이 끝나면 마을주민들은 절편과 마을에서 빚은 맑은 술을 먹으며 덕담을 나누는 시간을 갖고, 수퇘지는 주민들과 나누며 정을 쌓는다.
이러한 전통의식 덕분에 연대리는 예로부터 술 빚는 문화가 마을 대대로 이어져 오고 있다.


2년 전 마을의 이장인 이무권 대표는 연대리의 새로운 활로를 열고 전통주 체험마을 운영을 통해 마을의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만들고자 술 빚기 체험 교육을 수료한 부녀회원을 주축으로 이 사업을 추진해 주민 대다수가 조합원으로 참여한 연대리영농조합법인을 설립하게 됐다.

 

막상 법인을 설립했지만 가양주를 만들 공간이 확보되지 않아 이 대표는 누구보다 마음고생이 심했다. 오로지 마을의 발전과 주민들을 생각하며 다방면으로 자금확보를 위해 밤낮으로 뛰어다닌 끝에 금당권역 종합정비사업의 일환으로 다목적회관 건축비 5억7천만 원을 확보할 수 있었고, 여주시 세종만들기 사업 선정을 통해 추가로 1억5천만 원을 지원받아 결국 지난 7월 5일 여민락주 체험장 준공이라는 결실을 보게 됐다.

 

여주시 가남읍 연대리 638번지에 위치한여민락주 체험장은 제조 및 체험시설, 발효시설, 숙성시설, 보관시설, 야외체육시설 등으로 구성돼 있다.
이곳에서 빚어지고 있는 ‘여민락주’는 여주 자채쌀과 누룩, 약수 등을 넣어 빚은 맑은술로 마을 전통발효기법을 이용하는데 석탄주 기법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음식방문’을 비롯한 여러 고문헌에 소개되고 있는 석탄주(惜呑酒)는 한자로 ‘애석할 석’에 ‘삼킬 탄’자로 ‘향기롭고 달콤해 입에 머금으면 삼키기 어렵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이재숙 연대리 부녀회장의 설명에 따르면 ‘여민락주’는 멥쌀을 불렸다가 건져서 곱게 갈고 쌀가루를 넣고 죽을 쑤어 식힌 후 누룩을 섞어 밑술을 만들어 담근다. 또한, 찹쌀을 시루에 안쳐 고두밥을 짓고 차게 식혀 밑술에 넣고 고루 버무려 술밑을 빚은 뒤, 술독에 담아 안쳐서 덧술을 만들고 30여 일 발효시켜 막걸리를 짠다. 청주를 뜨는데 또 30일 정도 기다려야 하며, 여과와 발효 숙성을 통해 소비자가 맛보게 되는 때까지 100여 일이 걸린다고 한다. 이렇듯 연대리영농조합법인에서 생산하는 ‘여민락주’는 항아리에서 100일 동안 3번의 발효·숙성 과정과 거르는 작업을 거치는 등 마을 주민들의 정성으로 만들어져 명주로서 전혀 손색이 없다.


농림축산식품부 자료에 따르면 1970년대 소비 비중이 전체 주류에서 70%를 차지하던 막걸리는 한국인에게는 역사와 같은 술이다. 농촌이 안고 있는 여러 문제 중 가장 심각한 남아도는 쌀을 소비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로 우리 쌀로 막걸리를 빚는 방안이 대두됐다. 막걸리는 농촌과 도시의 콘텐츠를 연결하는 매개체로서 또 젊은이들에게 전통의 맛을 연결해주는 다리 역할까지 할 수 있다. 막걸리가 계속 발전함으로써 전통을 이어가고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아야 하는 이유가 생긴 것이다.


조선시대는 가장 찬란한 술 문화를 자랑했다. 고려시대부터 왕실에서만 마시던 증류주가 일반에도 전파됐고, 일본이나 중국으로 수출되기도 했다. 가양주 문화가 활성화됐고, 집안마다 다양한 술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에 우리 전통주는 뒤틀리는 운명을 맞았다. 1905년 을사늑약 이후 일제는 우리 민족문화 말살 작업을 본격화했다. 전통주도 그 대상이었다. 일제는 조선에 대한 통치 자금을 조성하기 위해 1916년 강화된 주세령을 발효했다. 이때부터 가양주 제조는 면허제로 변경됐지만 사실상 금지됐다.

가양주는 타인에게 양도하거나 판매할 수 없었고 술 제조자가 사망하면 상속인은 술을 제조할 수 없다는 것이 주세령의 내용이다.
이후 술은 일제 통제하에 제조돼 품질과 규격 등이 단일화됐다. 1916년 30만 명이 넘었던 가양주 제조자는 1930년 10명으로 감소했다. 광복 이후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전통주는 더 자취를 감췄다. 이어 1960년대 식량난으로 탁·약주 제조에 쌀 사용이 금지되면서 술은 밀가루 막걸리와 소주로 단순화됐다.

현재는 쌀을 이용한 전통주 제조는 가능해졌지만 이미 대량 생산되는 희석식 소주 등에 밀리고 주류 유통구조까지 대기업들이 지배하면서 설 자리를 잃어가는 모양새다. 정부는 2010년 ‘전통주 등의 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고 다양한 지원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전통주 활성화는 더딘 걸음이다.


이러한 현 추세에 당당히 우리 전통주 시장에 출사표를 던지고 영농조합법인을 설립해 ‘여민락주’를 생산하고 있는 연대리영농조합법인은 연세가 많아 농사일이 힘든 마을 어르신들에게는 새로운 일자리를 통한 수익 창출 효과와, 마을에서 생산되는 고품질 여주 쌀을 직접 수매해 사용함으로 농가 소득에 기여 하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거두고 있다.


아직은 초기 단계고 모두 수작업으로 만들다 보니 십여 명의 조합원들이 월 400~500여 병만을 생산하고 있지만 향후 판로만 확보되면 30명의 조합원들이 가입돼 있어서 추가 생산 여력도 높은 편이다.


‘여민락주’는 이 대표의 발로 뛰는 부지런한 영업전략으로 지난 추석 명절에만 1천 병이 넘게 팔렸을 정도로 소비자들의 반응이 좋다. 전통주이다 보니 일반 막걸리보다는 다소 비싼 1만5천 원(500㎖기준)에 판매되고 있지만, 좋은 여주 쌀로 빚어 향이 좋고 풍미가 뛰어나 한번 맛본 소비자들은 맛에 대해서 만큼은 최고의 평점을 주고 있다.

지난 10월 13일과 14일에 개최된 제1회 여주 가남 선비장터 문화축제에서도 하루 100병 이상이 판매됐으며, 최근 여주오곡나루축제에서도 관람객들의 많은 관심과 호응을 받았다.


이무권 대표는 “현재는 단일품목이라 경쟁력이 어렵다고 판단해 지역 특산품인 가지를 이용한 대한민국 최초의 가지 막걸리 등 4가지 종류의 전통술을 추가로 개발하고 있다”면서 “지역에 모범이 되는 마을기업으로 성장시키고 전통술의 고급화를 통해 ‘여민락주’ 브랜드가 여주의 대표적인 명주가 되도록 조합원들과 함께 더욱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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