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대란’을 타개하기 위해 정부와 정치권, 의사협회 등 단체들이 머리를 맞대고 있지만 서로간의 간극만 확인한 채 이른바 ‘여야의정 협의체’는 출범할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요원한 실정이다.
우선 ‘경증환자’들은 되도록 응급실 이용을 자제하고 응급의학과 의사들도 응급실을 지키면서 이번 추석 연휴 기간 최악의 사태를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연휴가 지난 첫날(19일) 더불어민주당은 “국민들은 불안 속에 떨고 있는데 의료 붕괴 없다는 윤석열 정부는 딴 세상 정부입니까?”라며 스스로 위안을 갖고 있는 정부를 탓했고, 같은 날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는 “정부는 국민들에게 응급실 오지 말라고 겁박하더니 ‘의료대란은 없었다’고 자화자찬하고 있다”고 맹비난했다.
의협이 낸 입장문을 살펴보면 “정부는 지난 추석 연휴를 앞두고 응급실 경증환자 본인 부담금을 인상한 채 비상 진료 대응 관련 브리핑에서 경증 및 비응급환자들에게 응급실 이용을 자제해달라며 사실상 겁박에 가까운 미봉책을 펼쳤다. 그런데 지금 와서는 국민들의 수준 높은 시민의식 덕분에 응급실 내원 환자가 올해 설에 비해 20% 줄었다며 의료대란은 없었다고 자화자찬하고 있는 것에 의협은 황당함을 금치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의협은 “특히 복지부는 현 의료사태 발생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응급의료 관련 통계를 제맛에 맞게 이용, 마치 우리나라 의료가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듯이 발표하고 있다”며 “전공의들을 수련병원에서 다 내쫓고도 의료가 별문제가 없다고 주장하려면 전공의 1만3천여 명이 없어도 문제가 없는데 왜 당장 의대 정원 2천 명을 교육 준비도 안 된 상태에서 늘려야 하는지부터 정부는 답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날 대통령실 장상윤 사회수석은 브리핑에서 “사직한 전공의(인턴·레지던트) 8천900여 명 중 33%인 2천900여 명은 다른 의료기관에 신규 취업해 의사로 활동 중”이라며 “전체 레지던트의 40%가 의료현장에 이미 돌아와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전공의가 의사라는 직업을 포기한 게 아니라 수련환경과 의료체계가 제대로 변화한다면 (병원으로) 복귀해 수련을 이어가고 싶어 한다는 방증”이라며 “전공의가 지도 전문의의 세심한 교육훈련을 받도록 투자를 강화하고 공정한 보상체계와 진료환경을 만드는 게 전공의 복귀의 지름길”이라고 밝혔다.
그야말로 의사단체와 정부가 같은 사안을 두고 각각 해석을 달리하면서 ‘동상이몽’ 하고 있는 모습이 아닐 수 있다.
의협은 “전체 전공의 1만 3천531명 중 수련병원 211곳에 출근한 전공의는 1천202명 (13일 기준, 복지부 자료)에 불과하다. 멀쩡히 수련받던 전공의 1만 2천329명 (91.1%)을 의료 농단 사태를 만들어 수련을 포기하고 일반의로 일할 수밖에 없게 만든 책임이 있는 대통령실 관계자가 국민과 의료계에 진심 어린 사과는커녕 투자 강화 등 속임수에 불과한 주장을 복귀의 지름길이라고 늘어놓는 것에 황당함을 넘어 분노를 느낀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지금도 진실을 왜곡하여 어떻게 해서든 잘못된 정책의 정당성을 얻으려 하지만 오히려 국민들은 지금 이 모든 의료대란이 정부에서 비롯되었음을 알아가고 있으며 이는 거듭 갱신하는 최저 지지율이라는 결과로 확인했을 것”이라며 “이렇게 정부가 국민들을 상대로 압박하고 거짓말을 하는 와중에도 전 의료계는 추석 연휴에 국민들이 걱정 없이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한시도 긴장을 놓지 않았다. 진료 현장에 남아 있는 의료진들은 이미 지칠 대로 지쳤음에도 불구하고 추석 연휴에 가족과 함께 쉬는 대신 환자들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밤낮으로 고군분투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의료계는 앞으로도 환자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기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할 것이나 정부의 입장 변화가 없으면 향후 의료시스템의 붕괴는 피할 수 없음을 다시 경고한다”고 으름장을 놨다.
조승래 민주당 수석대변인도 이날 오전 브리핑에서 “이번 추석은 유례없는 불안과 걱정으로 보내야 했던 연휴였다. 그럼에도 정부 여당은 추석 연휴가 지나자 의료 붕괴는 없었다며 황당무계한 주장을 펼치고 나섰다”, “개인 부담금 올리며 응급실 문턱을 높인 무능한 정부의 뻔뻔한 태도에 복장이 터질 것 같다. 의료시스템을 무너뜨린 것도 모자라 개개인에게 책임을 전가하며 상황을 모면하려고 하면서 뻔뻔하게 자기 합리화하는 꼴이 정말 가관”이라고 비틀었다.
그는 연휴 기간 아찔한 응급실 뺑뺑이 사례가 있었음을 언급하며 “윤석열 정부의 변명도 목불인견이다. 정부는 ‘응급실 뺑뺑이’는 원래 있던 문제라며 의료 개혁을 미룬 결과가 ‘응급실 뺑뺑이’라는 궤변을 늘어놓고 있으니 정말 파렴치하다”라며 “의료현장은 하루하루 위태로운 순간들을 견디고 있는데 이런 파국을 만든 정부가 억지 주장으로 면피에만 골몰하고 있으니 한심할 따름이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정부를 설득해야 하는 국민의힘 입장에서는 “지금 여야의정 협의체가 아니면 이 문제를 풀기 위한 출발은 어렵다”며 일단 협의체를 출범시키는 데 최선을 다할 것임을 천명했다.
한동훈 대표는 19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의료 상황과 관련해서 저희가 여·야·의·정 협의체를 제안했고, 그 출범을 준비하고 있다. 추석 연휴 기간 내에 제가 관련 인사들 다수와 1대 1로 만나서 대화를 나눴다. 대화해보면 확실히 간극이 좁혀지고 어떤 문제를 서로 간에 중요하게 생각하는지에 대해서 잘 알 수 있었다”며 “그간에 쌓여온 불신은 물론 크게 남아 있지만 이 문제를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위해서 반드시 신속히 해결해야 한다는 마음은 제가 만난 모든 의료계 인사들이 같았다”고 전했다.
한 대표는 “결국 충분히 설득 드리면서 여·야·의·정 협의체 참여를 기다리겠다”며 “날씨는 추워질 것이고 골든타임은 지나가고 있다. 여·야·의·정 모두 힘을 모아서 이 문제를 해결하자. 국민의 건강만 생각하자는 말씀을 다시 한번 드린다”고 호소했다.
추경호 원내대표도 ‘의료 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다시 한번 의료계에 간곡히 요청드린다. 조속히 여·야·의·정 협의체에 함께 참여하면서 의료계의 건의 사항 등 모든 문제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허심탄회하게 논의하여 답을 찾아가자. 국민의힘은 유연하고 열린 마음으로 진정성 있게 대화해 나갈 것임을 다시 한번 말씀드린다”고 덧붙였다.
한편, 한동훈 대표는 의료계와 맨투맨 대면 접촉을,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종교계를 찾아 중재를 요청하는 등 힘쓰고 있는 모습이지만 정부와 의료계 간 주장하는 갭이 큰 상태여서 협의체 출범은 물론이고 당분간 의료공백으로 인한 국민 불편은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곧 10월 가을철 유행병 등이 우려되고 있지만 정부와 여야, 의료계에게 주어진 시간은 다음 주가 마지노선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