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릉도원의 쉼과 따스함이 있는 공간
무릉도원의 쉼과 따스함이 있는 공간
  • 정해균 기자
  • 승인 2019.05.20 16: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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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카페 ‘궤짝도원’ 과거와 현재 이어주는 비밀 통로 보석함 같은 곳

 

바쁜 일상에 지치고 산적한 삶의 문제로 머리가 아플 때 생각나는 카페가 있다.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향이 좋은 커피 한잔을 친구삼아 운 좋게 창밖으로 내리는 비를 하염없이 바라보게 된다면 어느새 인생의 골치 아픈 문제들이 스르륵 정리되는 나만의 힐링 장소이자 아지트 같은 곳.

사람이 북적거릴 때든 아닐 때든 환한 웃음과 편안한 친절함으로 반갑게 맞아주는 카페주인 신종덕·황승현씨 부부 덕분에 언제 어느 때 가도 기분 좋은 곳 카페 ‘궤짝도원’이 그곳이다.

카페 ‘궤짝도원’은 이천시 장호원읍과 다리 하나 사이를 두고 인접한 음성군 감곡면 오궁리에 위치하고 있다. 감곡면은 전국 최고의 맛을 자랑하는 햇사레 복숭아를 이천시와 공동사업법인을 만들어 출하하는 지역으로 이천시와 아주 가까운 이웃 지역이다.

사실 카페 ‘궤짝도원’은 복숭아 과수원 한가운데 나무상자를 엎어 놓은 듯한 이상한 건물이 멀리서도 눈에 확 들어오며, 커다란 궤짝 모형이 비스듬하게 땅에 박힌 모양새가 시선을 끌고 있어 여러 방송 매체에 소개되는 등 유명세를 탄 곳이다.

그래서 단순한 카페라기보다는 갤러리 카페, 미술가의 농원, 미술가의 교육농장, 건축·조형 디자인연구소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물론 이곳에서 맛볼 수 있는 직접 내린 다양한 핸드드립 커피와 와플, 수제 돈가스 등의 메뉴가 맛이 없었다면 유명세는 금방 식었겠지만 말이다.

지난 2009년 카페 건물인 궤짝 건축물을 직접 건축하고 현재까지도 공간 하나하나를 직접 조성하며,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미술가 신종덕 작가는 그래서 이곳의 이름을 단순한 카페가 아닌 ‘시골 궤짝도원’으로 지칭하고 있다. 말 그대로 복숭아나무가 많은 정원이자, 무릉도원의 쉼과 따스함이 있는 공간으로 기억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대학에서 미술교육을 전공하고 미술 교사가 돼 안정적인 삶을 걸어갈 수도 있었던 신 작가는 틀에 짜여진 인생이 아닌 내 삶은 자신 스스로 만들어 가야겠다고 생각해 서른 살이 되던 해, 고향 감곡으로 돌아와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의 마음 한편에는 자신만의 에너지를 쏟고 싶은 열망이 샘솟고 있었다. 그때 우연히 바라본 복숭아 궤짝이 눈에 들어왔다.

“종이 상자가 나오면서 궤짝이 하나둘 사라지는 것이 왠지 서글펐다. 어릴 적 복숭아가 가득 담긴 궤짝을 보면 누구나 환한 미소를 지었던 것처럼 저 또한 궤짝을 본 순간 그동안 힘들고 슬펐던 마음도 비울 수 있었고 또 새로운 걸 채우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땀의 결실인 복숭아를 담는 궤짝이야말로 인생을 담을 수 있는 넉넉한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미술학원 운영과 함께 솥뚜껑, 누드 자동차, 매괴성당 모형 등을 제작하면서 자신감도 커졌다. 틀 속에 갇힌 자신의 삶을 벗어 던지고자 과감히 대지를 도화지 삼아 큰 궤짝을 만들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3년여에 걸쳐 손수 지은 카페 궤짝은 지난 2012년 음성군 ‘아름다운 건축물’로 지정됐으며, 특허청에 ‘궤짝’ 디자인으로 등록 출원이 된 상태다.

신 작가가 예술가가 되고 귀향에 이르기까지 큰 결심을 할 수 있었던 건 바로 아내 황승현씨 덕분이다. 중학생 때 처음 만난 아내에게 첫눈에 반했지만, 아내가 대전으로 이사하면서 멀어지게 됐고 아내를 다시 만나고 싶은 마음에 대학이든 직장이든 남들 부럽지 않게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에 고등학교 때 독학으로 미술을 시작해 미술 교사가 되겠다는 목표도 가지게 됐다. 이후 쉽지 않은 귀향을 결정할 때도 선뜻 믿어주고 따라와 준 아내 덕분에 여기까지 오게 됐다며 아내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했다.

신종덕 작가는 단순히 카페를 운영하기 위해서만 시골 궤짝도원을 조성한 것은 아니다.

자신이 살아가는 모습을 통해서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다. 고향을 지키며, 농촌에 정착해서 어떻게 살아갈 수 있는지 직접 자신이 성공한 메신저의 역할을 하고 싶었다.

단순한 물질적 성공이 아닌 예술가의 감성과 행복을 전달해 주는 문화적 성공을 담고 싶었다.

그가 처음 귀향을 선택하고 정착하는 과정은 그리 녹록하지만은 않았다. 고향에 내려왔지만, 시골 분들은 격려가 아닌 비난에 가까운 말들로 마음의 상처를 입혔다.

힘든 날들도 있었지만, 차근차근 천천히 가다 보니 이제는 그 진심을 이해하고 인정하면서 그의 다음 작품에 대해 기대하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귀농 이후 서양화보다 토탈아트 설치미술가로 방향을 전환해 작업하다 보니 작업실을 이용한 ‘지역 어린이 미술교육’에도 자연히 관심을 갖게 돼 농진청에서 인증한 지역 어린이 교육농장을 만들어 초등학생과 유치원생들의 일일 미술 교실을 운영하고 틈틈이 마을 사람들에게도 미술을 가르친 그의 순수한 노력과 진심이 통했기 때문이다.

신 작가는 지난 10년간 카페를 통해 오롯이 지역사회에 융화되고 진심을 알렸다면 이제는 본격적으로 작품활동으로 그의 꿈을 이루기 위한 더 큰 발걸음을 내디딜 예정이다. 그래서 올해부터 일주일 중 월요일 하루 쉬던 카페를 화요일까지 이틀간 문을 닫고 이 시간에 작품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카페 궤짝도원에는 지금도 곳곳에 움직이는 키네틱 아트 작품이 설치돼 있지만, 더 많은 작품으로 채워서 올해 첫 번째 전시회를 가진다는 계획이다.

그가 생각하는 예술은 거창하거나 어려운 것이 아닌 놀이터에서 즐기듯이 작은 면 소재지에도 어울리며, 시골 어르신들도 누구나 작품을 통한 즐거움을 느끼고 ‘하하 호호’ 웃을 수 있는 매개체이다. 사람들 저마다의 가슴속 상자 ‘궤짝’을 즐거운 예술로 가득 채울 예정이다.

신종덕 작가는 “지하 골방에서 작품활동만 매진했던 내가 카페를 통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에너지와 열정을 나눌 수 있었다. 이곳에서 단순히 음료를 판 것이 아니라, 마음을 파는 비워내는 시간을 통해 오히려 나를 채우는 시간이 됐다”면서 “이곳은 궤짝이라는 투박한

과거와 디지털 시대 컨테이너박스 세대인 현재를 이어주고 통하는 비밀 통로인 보석함 같은 곳으로 이제는 보석함 속에서 작품이라는 보석을 꺼내 대중들에게 한 발 더 다가가겠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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