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마도를 정벌한 익원공 김사형[金士衡] - 천지음양풍수연구소 소장 주암
대마도를 정벌한 익원공 김사형[金士衡] - 천지음양풍수연구소 소장 주암
  • 황선주 기자
  • 승인 2019.09.05 11: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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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대소 간의 사건일지라도 지났다고 해서 잊혀지는
게 아니고 면면(綿綿)히 후손들에게 기억되고 각인되어
지는 것이다.

헌데 섬나라인 왜인(倭人)들은 고려 말부터 자행해온
노략질을 위시하여.임진왜란.정유재란.을사늑약.한일
병합까지 하여 언 강토를 짓밟고 인권을 유린한 천인공
노할 짓을 저질러 놓고도 업보(業報)를 짊어지기는 켜녕
오히려 정당화시키고 심지어는 독도까지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날강도 짓을 서슴지 않고 강대국의
갑질로 민간인의 자유무역인 경제활동까지 제약을
두니 민주주의 국가로서의 기본적인 룰도 안 지키는
안하무인의 국가가 아닐 수 없다.

우리 양평군에 노략질을 일삼은 왜인들을 혼내키위해
1396년(태조 5년)에 오도병마도처치사.로 원정군을
지휘해 대마도를 정벌하여 크게 혼내 키고 교화시킨
인물이 있었으니 다름 아닌 약포 김사형[金士衡)이다.

양평군 양서면 목왕리에는 구정승골이 있다.
구정승중 으뜸은 구정승골 제일 위쪽에 있는 김사형[金
士衡.1341년(충혜왕 복위2)~1407년 (태종7)]이다.


김사형은 여말과 조선 초의 혼란기에 문무를 겸비하고
맡는 직책마다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여 칭송이 자자했고
조준(趙浚)과 함께 8년간 정사를 살필 때도 강직하면서 과감하게 추진한 반면 김사형은 깊고 침착하여 지혜가
있었고 조용하고 중후하여 말이 적었으며 남에게 모난
곳이 없었다.또한 재산을 경영하지 않고 성색(聲色)을
좋아 하지 않았으며 관대하면서 간요(簡要)로 균형
잡힌 정치력을 발휘해 한 번도 탄핵을 받지 않은 행정의
달인이었다.

이러한 대인이었기에 풍수의 달인인 사위 신효창(申
孝昌)은 후손들의 번창과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는
좋은 길지에 장인을 모시고 풍수지리 도사인 자신은
조금 못 미치는 장인자리 아래에 묻혀 장인을 보필하는
형국이라 상.하의 위계질서를 떠나 참으로 존경스런
관계가 아닐 수 없다

김사형은 안동김씨 5세손.이고 상해 임시정부 주석인
김구는 김사형 2남 후손으로 25세손이다.

아직도 구시대적인 사고로 하대형식으로 나가는 왜인
들에게 지지 않으려면 더욱 노력하고 더욱 단결하여야
겠기에 대마도를 정벌하고 교화시키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낙포 익원공을 기리고자 올리는 바입니다.

< 풍수적 고찰 >
청계산(658m)을 태조산으로 辛戌-壬子-乾亥-丙午로
지현굴곡으로 달려와 辛戌로 입수하는데 용진혈적이다
과협은 참 좋은데 마지막 변화가 조금 미흡하지만 도두
에 이르러서 융기한 후 혈장으로 입수를 한다.
워낙 기운이 강해 한 곳에 다 흡수를 못하고 더 내려가
끝맺음을 하는데 그곳을 자신의 신후지지로 잡은 사위,

안산은 주인과 상응해야 하고 주인을 포근히 감싸주는
게 좋은데 음양교구는 했으나 유정하지 못한 게 아쉽다.
좌.우 용호사는 내청룡.내백호는 낮은 자세로 읍하는
형태이고 외청룡.외백호는  유정하기보다는 기골이
장대한 호위무사형이다.

좌향은 을좌신향(乙坐辛向)에 내파는 신파(辛破).
외파는 유파(酉破).다.이기법에서 내파가 우선이니
이는 화국(火局)의 묘향묘파(墓向墓破)다.
이는 우선룡에 좌선수 (左水到右).을좌신향(乙坐辛向)
에 신방(辛方)수구다.

양균송(楊均松)의  88향법에 따르면-
좌수가 우로 흘러 향의 을방으로 나가며 술자(戌字)를
범하지 말고 백보전란(百步轉欄).용진혈적(龍眞穴的)
.천간자 파구면 묘향묘파(墓向墓破)로 대부부귀(大富
大貴)하게 되는데 만약 약간이라도 차질이 있다면
황천(黃泉)을 범하여 패절하는 화를 입으니 신중해야 한다.

다행히 풍수 달인이어서인지 재혈을 적중해 사위(신효창)
덕분으로 편안히 계실듯...
물은 혈장자리에서 보이지 않고 혈장자리가 장군대좌
형처럼 우뚝 솟는 형세이니 富보다는 貴.武.權에 가까
워 보인다.


김사형[金士衡.1341년(충혜왕 복위2)~1407년 (태종
7)]은 고려 말 조선 초 문신.본관은 안동(安
고려 말 조선 초 문신.본관은 안동(安東). 자(字)
는 평보(平甫), 號는 낙포(洛圃).시호(諡號)는 익원(翼
元).고조부(高祖父)는 고려때 명장군이자 충신으로
문무를 겸비한 재상 충렬공(忠烈公) 김방경(金方慶-
안동김씨 시조).증조부(增祖父)는 믄영공(文英公) 김순(金恂).조부(祖父)는 정난공(貞簡公) 김영후(金
永煦).부(父)는 부지밀직사사 김천(金蕆).사위가 평산신씨 제정공 신효창.이다.

위화도 회군 후 1392년 삼사좌사·동판도평의사사로
있다가 이성계를 추대하여 개국공신 1등에 봉해지고,
1398년(태조 7) 제1차 왕자의 난에는 적장자에게 왕위를
잇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여, 정종이 즉위하자 정사공신
1등이 되었다. 1399년(정종 1) 등극사(登極使)로
명나라에 다녀와서 1401년(태종 1) 좌정승,영사평
부사를 지내고 상락부원군이 된 뒤 관직에서 물러났다.

★신효창
신효창(申孝昌.~1440)은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본관 평산(平山). 字는 우지(友之).시호 제정(齊靖
조부는 고려 말 어사대부(御史大夫)를 지낸 신군평
(申君平).조선 개국 당시 음관으로서 대사헌.충청도
관찰사를 지냈는데 특히 풍수지리에 밝아 풍수학제조
(風水學提調)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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