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명 소중한 목숨 앗아간 이천 화재 참사, 화재 원인은 여전히 ‘오리무중’
38명 소중한 목숨 앗아간 이천 화재 참사, 화재 원인은 여전히 ‘오리무중’
  • 정해균 기자
  • 승인 2020.05.12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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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희청소년문화센터 합동분향소 추모객 발길 이어져…유족들 날마다 오열
△지난 7일 서희청소년문화센터 합동분향소에서 유가족들이 합동 추모제를 진행하면서 먼저 떠나간 가족들의 이름을 애타게 부르고 있다.
△지난 7일 서희청소년문화센터 합동분향소에서 유가족들이 합동 추모제를 진행하면서 먼저 떠나간 가족들의 이름을 애타게 부르고 있다.

지난달 29일 오후 1시 32분께 이천시 모가면 한익스프레스 물류창고 신축공사장에선 폭음과 함께 화염이 치솟았다.

현장에는 80명 가까운 근로자들이 공사 막바지 작업에 몰두하고 있었다.

우레탄폼 작업 중 발생한 유증기가 원인을 알 수 없는 점화원을 만나 대규모 폭발로 이어진 사고로 38명이 목숨을 잃는 등 50명의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불이 가연성 물질을 만나 주변으로 급속히 퍼진 데다, 샌드위치 패널로 지어진 건물에서 유독성 가스가 다량으로 발생했기 때문이다. 사고 원인을 놓고는 아직 추측만 무성하다.

사고 현장 안팎에선 불이 난 건물에 안전관리자가 없었다거나, 발화물질인 시너 통을 옆에 두고 용접 작업을 했다는 주장이 이어지고 있다.

피난 유도등이나 비상경보장치가 없어 피해를 키웠다는 생존자들의 증언도 안타까움과 사회적 공분을 키우는 요인이다.

사고 직후 생업을 내팽개치고 각지에서 이천으로 한걸음에 달려온 유가족들은 억장이 무너지는 가슴을 부여잡고 날마다 합동분향소를 지키고 있지만, 10여 일이 지난 지금까지도 정확한 화재 원인이 규명되지 않아 대부분 장례도 치르지 못한 채 답답함만 깊어지고 있다.

유가족들은 하루빨리 장례를 치를 수 있도록 정부가 사고 원인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시급하게 진행해달라고 호소하고 있는 상황이다.

경찰은 우선 사망자들의 사인을 밝혀내는 데 수사력을 모으는 한편, 안전관리 의무 이행 여부 등에 대한 수사도 이뤄지고 있다.

경찰은 앞서 지난달 30일 건축주인 ㈜한익스프레스의 서울 서초구 본사 사무실과 시공사인 ㈜건우의 충남 천안 본사 사무실, 감리업체, 설계업체 등 4개 업체 5곳에 대해 압수수색을 진행해 공사 설계·시공과 관련한 자료를 확보했으며, 지난 1일에는 이천시청을 압수수색해 인허가 자료와 건축도면 등을 확보했다.

이어 지난 4일에는 불이 난 이천시 모가면 물류창고 현장사무소와 공사관계 업체 사무실 등 7곳을 대상으로 3차 압수수색을 실시해 시공계획서를 확보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경찰은 시공계획서와 도면을 바탕으로 공사 과정에서 불법 증·개축 등 관련법 위반사항이 없었는지 등을 살펴보고 있으며, 공사업체 사이에 재하청 등 불법 하도급이 있었는지도 조사할 예정이다.

또한, 화재 관련자를 상대로 조사를 벌이는 경찰은 업체 관계자에 대해 출국금지 조치를 내렸다.

지난 10일 오전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수사본부는 이천서희청소년문화센터 3층에서 유가족들을 만나 수사상황 브리핑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경찰은 화재 원인과 책임 소재를 명백하게 밝히고자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고 밝혔다.

나원오 경기남부지방경찰청 형사과장은 “한익스프레스와 건우, 생존자 등 화재 관련자 63명을 상대로 조사 중이고 업체 관계자 29명은 출국금지 조치했다”며, “여러 차례의 압수수색으로 설계도면·공사일지 등의 자료를 확보해 시공 과정과 안전관리 위반 측면을 집중 분석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업체 관계자들로부터 압수한 휴대전화·노트북 등은 디지털 포렌식을 통해 삭제된 자료까지 복원해 조사 중”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경찰은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수사 중이며, 섣부르게 결론 내린 사실이 없다고도 전했다. 또 희생자 18명을 대상으로 진행했던 부검은 국과수에서 분석을 진행하고 있으며, 이달 중순 또는 하순 정도에 결과가 나올 것 같다는 예상을 전했다.

아울러 경기남부지방경찰청과 경기소방재난본부, 국립과학수사연구원, 한국가스안전공사, 한국전기안전공사,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등 6개 기관은 지난 6일까지 3차에 걸쳐 합동 감식을 벌였다.

경찰 관계자는 “불은 지하 2층에서 시작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감식을 통해 불이 난 지점을 특정하고 이를 통해 정확한 화재 원인을 찾아야 한다”며, “앞서 발견된 산소용접기 등이 이번 화재와 어떤 연관이 있는지 등도 향후 국과수 분석을 비롯한 조사를 통해 밝혀야 할 부분”이라고 전했다.

한편 지난 2일 마지막 사망자의 신원이 확인됨에 따라 희생자 38명의 위패와 영정이 모두 안치된 이천서희청소년문화센터에 마련된 합동분향소에는 매일 저녁 6시 유가족들의 합동 추모식이 열리고 있으며, 지난 4일부터 일반인의 조문이 가능해져 희생자들의 마지막 길을 함께하려는 이들의 조문이 이어지고 있다.

정부 관계자, 정치인을 비롯해 기관·사회단체, 일반 시민 등 10일까지 5천여 명의 조문객이 합동분향소를 다녀갔다.

이천시 재난안전대책본부는 이천서희청소년문화센터 지하에 유가족들이 쉴 수 있는 임시 휴게공간을 마련했으며, 유가족들이 장례 기간 머물 수 있도록 이천지역 6개 숙박시설 이용을 지원하고 있다.

또 희생자 유가족마다 공무원들을 1대 1 전담 배치해 애로사항을 청취하는 등 유가족들을 돕고 있다.

엄태준 이천시장은 “참사가 발생했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들의 애도 공감 속에 유가족들이 장례절차를 진행하고 철저한 수사와 제도개선 연구가 혼란스럽지 않게 차분한 분위기에서 진행돼야 하지만 유가족들이 장례절차를 미루며, 시공사 등과 배상금 합의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가장 중요한 것들을 실천할 수 없다”면서 “화재 참사 발생 시 책임자 처벌여부 내지 책임의 경중과 관계없이 중앙정부 차원에서 법률로 정한 적절한 위로금을 유가족들에게 먼저 지급한 후 정부가 책임자에게 구상권을 행사하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화재 발생에 취약한 건축자재 사용금지, 안전관리자 관리·감독 권한 지자체 이양 등 유사한 화재 참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근본적인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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