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그림은 터널 뒤 만난 밝은 세상”
“딸 그림은 터널 뒤 만난 밝은 세상”
  • 황선주 기자
  • 승인 2020.07.27 15: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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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혜 작가의 어머니 장차현실
장차현실씨와 정은혜 작가.

 

정은혜 작가는 간단한 의사소통만 가능해 그와 작품세계 등 깊이 있는 대화를 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어머니를 통해 정 작가가 그림을 시작하게 된 동기, 부모로서 겪었던 어려움 등 두 사람의 삶의 궤적에 대해 들어봤다. 정 작가의 어머니 장차현실씨는 “발달장애인과 같은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희망을 잃지 않고 자신의 재능과 소질을 찾아서 자신의 삶을 행복하게 살 수 있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또 “선입견이 고정관념이 되지 않고 비장애인들과 함께 교육하고 성장할 수 있어 장애인을 둔 부모들이 절망하지 않는 사회, 편견 대신 존중이 넘쳐나는 사회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소망했다.
다음은 장차현실씨와의 일문일답.

본인에 대해 간략히 소개해 달라.
31세 정은혜 작가의 엄마이자 만화가다. 1997년도부터 만화를 그리기 시작해 주로 장애와 여성에 대한 주제를 가지고 그림을 그리고 있다.
2018년 2월부터 ‘경기 장애인 부모연대 양평 지회장’을 맡고 있다. 오는 12월 임기가 끝난다. 작가들, 발달장애인 창작자 등과 그림 작업을 하거나 딸의 조력자 역할을 하고 있다. 발달장애인을 위한 협동조합도 만들고자 한다. 홍익대 회화과에서 동양화를 전공했고 딸 은혜를 위해 신문, 잡지, 어린이책 등에 그림을 그려주기도 했다. 1996년부터 만화를 그렸다.

딸 정은혜 작가는 그림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
은혜가 작업실에서 다른 사람이 그림 그리는 것을 보고 그림 연습을 시작했다. 24살 때였다. 딸의 그림을 보고 재능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됐다. 그래서 그 이후 작업실에 은혜 자리를 만들어줬다. 그림을 보는 순간 비록 장애를 가진 딸이지만 독특한 영역과 재능이 있었구나하고 깨닫게 됐다. 그 순간 부모로서 모르고 있었다는 죄책감이 많이 들었다. 솔직히 그 이전까지는 은혜가 세상에서 비장애인과 비슷하게만 살아도 좋다고 생각했다.
은혜는 항상 집에서 뒹굴며 혼잣말하던 아이였다. 심한 때는 조현병 증세까지 보이기도 했었다. 그런 딸이 갑자기 보여준 그림은 어둠의 터널을 지나온 뒤 맞는 찬란하고 밝은 세상같았다. 처음엔 장애를 가진 딸이 마냥 안쓰러웠다. 하지만 그림을 보는 순간 꽃다운 어린 아이의 인생이 쓰러지기 전에 사람으로서 제대로 서는 모습을 보고 죽어야겠다 결심했다. 그래서 은혜에 대해 작정한 듯이 몰입했고 딸은 마치 그것을 엄마에게 증명이라도 하듯 4년 만에 2700명의 인물을 그려냈다. 양평군민만 해도 392명이나 된다. 내 딸이지만 대견하다.

그간 힘들었던 기억이나 부모로서 겪는 어려움이 있다면
부모로서 마음속에 마음들을 후련히 드러내지 못한 것이 많았다. 삭발과 같은 농성들도 해봤다. 문화 운동 통해 장애인들의 삶이 지역 사회 안에서 어떻게 이뤄지는 지 살펴볼 수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장애인 가족들이 황폐화된 삶을 사는 것을 주변에서 많이 봐왔다. 그 것이 마음 아프다.
보통 아이들이 갑작스런 돌발행동을 할 때 독한 약으로 마음을 안정시키고는 한다. 하지만 독한 약으로 오래 살지 못하는 아이들을 봤을 때 너무 가슴이 아프다. 그 안쓰러움을 어떻게 싸워나가야 할지 아직도 고민하고 있다. 발달장애인은 대부분 언어 소통이 안 된다. 그래서 발달장애인들이 지역 사회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것에 대한 해법은 아직도 갈 길이 먼 것 같다.
장애인들의 삶이 비장애인들과 함께 지역 사회 안에서 뿌리 내리기를 바란다. 현재 전국 장애인부모연대 회원은 20만명이며 서울에만 5000여명가량이 있다. 양평지역 발달장애인은 750명 정도인데 회원수는 40명 정도다. 지원책 많이 생겼지만 앞으로 물리적환경이 뒷받침 돼야 한다. 학령기 보다 아이들이 학교를 졸업한 이후인 성인이 되었을 때 더 많은 문제와 어려움이 발생한다.

양평으로 오게 된 계기는.
딸 은혜가 16살 때 생명의 고비를 맞을 정도로 심하게 아팠다. 당시 폐혈증으로 3일간 중환자실에 입원했다. 입원해 있는 동안 약을 달고 살아야만 했다. 더 이상 약에만 의존할 수 없다는 생각에 좋은 먹거리와 아름다운 환경을 찾아 남양주 덕소에서 양평으로 지난 2000년 이사를 오게 됐다. 딸의 특수교육을 위해 발도르프 학교를 보내고 제 월급의 90퍼센트를 썼다. 딸이 행복하게 사는 것과 본연의 모습을 찾으면서 삶의 중심을 갖고 행복하게 살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자식의 모습을 인정하며 행복을 찾기 위한 노력이 중요하다.

양평군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개인이든 지자체든 발달장애인들에게서 ‘가능성’을 발견할 때 그들은 결코 무용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 알게 될 것이다. 지원금을 얻는 것보다 문화적 변화와 사람들이 의식을 바꾸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 은혜가 그림을 그리면서 장애를 극복하는 데 큰 힘을 얻었듯이 그들만의 장점과 특기 재능을 발견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은혜가 혼자 방에서 혼잣말을 할 때 가족들은 모두 긴장 상태였다. 그런 딸이 ‘누나’로서 이제는 동생 학원비도 보태줄 만큼 자신의 역할을 톡톡히 해주고 있다.

장애인에 대한 인식 개선을 위해 선행되어야 할 것은.
중요한 것 중 하나는 ‘그들도 우리와 다르지 않다’는 생각과‘그들의 삶도 있다’는 대중들의 인식이다. 우리가 그들을 배려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들도 우리와 같은 사회의 일원임을 인정해야 한다. 취약한 부분을 ‘동등’이란 미명 하에 무시해선 안된다. 어려운 사람도 함께 살아야한다. 그들이 어렵다고 해서 어둠에 내버려두는 것이 아니라 복지 등 제도를 통해 그들과 함께 하려는 동행의 마음이 중요하다.

제일 행복했던 순간은.
딸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할 때다. 첫 전시회는 2017년 문호리리버마켓 야외전시장에서 했다. 당시 행사 감독이 전시회장을 만들어줘서 전시회를 했는데 약 1000명이 관람했다. 너무 기뻤다. 장애를 가진 아이여서 인생이 힘들기만 할 것 같았는데 딸로서 엄마에게 기쁨을 준 날이었다. 그림자와 선을 중시하는 딸의 작품을 자세히 보면 아주 디테일하다. 당시 보인 관객들의 첫 반응도 아주 뜨거웠다.

향후 목표가 있다면.
딸 은혜에게 그림이란 단지 인물화가 아니라, 그에게 있어서 다시 태어난 새 생명이고 희망이자 인생의 기쁨이다.
은혜를 통해 소수 장애인들이 열악한 상황을 갖고도 희망을 찾아갔으면 한다. 이름 그대로 딸이 누군가에게 은혜로운 사람이 되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발달장애인과 같은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희망을 잃지 않고 자신의 재능과 소질을 찾아서 자신의 삶을 행복하게 살 수 있길 기대한다.  선입견이 고정관념이 되지 않고 비장애인들과 함께 교육하고 성장할 수 있어 장애인을 둔 부모들이 절망하지 않는 사회, 편견 대신 존중이 넘쳐나는 사회가 되기를 희망한다. 
황선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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