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하며 역사 배우는 특별한 명소 ‘이천서희테마파크’
산책하며 역사 배우는 특별한 명소 ‘이천서희테마파크’
  • 정해균 기자
  • 승인 2018.10.29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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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협상가 장위공 서희 선생 리더쉽 배우는 체험학습 장소로 인기
▲ 추모관 앞 누각에서 바라본 이천 시내
▲ 적장 소손녕과 담판하는 서희

 

(정해균 기자)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이 이뤄지고 북·미 대화 등이 지속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가운데, 고려의 협상가이자 우리 역사상 가장 유능했던 정치외교가로 이름을 떨친 장위공 서희(942~998) 선생을 기리는 이천시 ‘서희테마파크’가 외교 역사교육의 산실로 더욱 주목받고 있다.
이천시 부발읍 무촌로 18번길 130 효양산 자락에 위치한 서희테마파크는 고려시대 거란 침공 때 소손녕과 담판해 80만 대군을 물리치고 강동 6주를 회복하는 등 뛰어난 외교술로 널리 알려진 서희 선생의 업적을 기리고 그 정신을 고취하고자 지난 2016년 6월 개원했다.
이천 서씨(徐氏) 시조인 서신일 선생의 묘가 있고, 서희 선생의 고향인 이곳에 이천시는 2011년부터 157억 원을 들여 14만2천여㎡ 규모로 다양한 형상물과 함께 연면적 617.31㎡의 서희역사관을 비롯해 전시관, 추모관, 누각 등으로 꾸며진 서희테마파크를 조성했다.

서희, 담판으로 거란 80만 대군 물리쳐
고려초기의 정치가였던 서희(942~998) 선생은 할아버지 신일 때까지는 이천 지방의 토착 호족이었다가 아버지에 이어 자신도 재상의 자리에 오르면서 중앙의 지배세력으로 등장했고, 뒤이어 그의 아들 눌(訥)과 유걸이 각각 내사령과 좌복야를 지냈을 뿐 아니라 눌의 딸이 현종의 비가 됨으로써 고려 사회의 주요 문벌이 됐다.
942년에 태어난 서희는 집안도 좋았지만, 열아홉 살 되던 해 과거에 급제했고 과거 급제 후 차례를 뛰어 넘어 승진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을 보면 학문적으로도 매우 뛰어난 인재였다. 송이 건국되던 해, 서희는 과거에 급제했고, 12년 뒤 내의성 시랑의 벼슬로 송나라에 사신으로 파견된다.
서희의 예의바른 태도와 뛰어난 언변에 송 태조는 고려와 정식으로 외교 관계를 맺고, 조칙을 내려 광종에게 식읍을 더해주었으며, 서희에게는 검교병부상서라는 벼슬을 내렸다. 명예직이기는 하나 지금의 국방부 장관에 해당하는 관직이다.
 젊은 시절부터 서희의 외교적 역량이 탁월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경험을 통해 서희는 송과 거란이 대치하고 있는 동아시아 국제정세에 대한 안목을 키울 수 있었다.
993년 고려의 북진정책과 친송외교에 불안을 느낀 거란은 동경유수 소손녕이 이끄는 대군으로 고려를 침략했다. 거란 장수 소손녕은 공문을 보내 ‘80만의 군사가 도착했다. 만일 강변까지 나와서 항복하지 않으면 섬멸할 것이니, 국왕과 신하들은 빨리 우리 군영 앞에 와서 항복하라’ 건국 75년 만에 고려에게 국운을 위협하는 심각한 국가적 재난이 찾아온 것이다.
이 때 고려 조정에서는 적의 대군을 대적할 수 없으니 항복하자는 의견과 서경(지금의 평양) 이북의 땅을 떼어주고 화의하자는 할지론(割地論)이 우세했다.
그러나 서희는 거란의 출병 목적이 영토 확장에 있지 않음을 간파하고 거란에 맞서 싸울 것을 강력히 주장했다. 이때 소손녕이 청천강 남쪽의 안융진을 공격하다가 중랑장 대도수에게 패하게 되자 고려와의 담판에 응하게 됐다.
먼저 거란 진영에 도착한 서희는 소손녕이 신하의 예로 뜰에서 절할 것을 요구하자 이를 거절해 결국 서로 대등한 예를 행하고 대좌하도록 했다.
소손녕은 고려를 침입한 이유를 첫째, 고려는 신라땅에서 일어났는데도 거란이 소유하고 있는 고구려 땅을 침식하고 있으며, 둘째, 거란과 땅을 접하고 있으면서도 바다 건너 송나라를 섬기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면서 땅을 떼어 바치고 조빙(朝聘)을 하면 무사할 것이라고 위협했다.
이에 대해 서희는 “우리나라는 고구려의 뒤를 이었으므로 나라 이름도 고려라 하고 평양을 도읍으로 삼은 것이다. 만일 땅의 경계로 논한다면 너희 요나라의 동경(지금의 랴오양)도 모두 우리 경내에 있는 셈이니 어찌 우리더러 땅을 침식했다고 하는가.
또 압록강 안팎도 우리 경내였는데 지금은 여진이 그곳을 차지해 완악하고 간사한 짓을 하므로, 도로가 막힌 탓에 그 어려움이 바다를 건너는 것보다 심하다. 조빙을 하지 못하는 것은 여진 때문이니 여진을 쫓아내고 우리의 옛 땅을 되찾아 성보를 쌓고 도로를 통하게 하면 어찌 조빙을 하지 않겠는가.” 이는 고려의 북진정책이 역사적으로 타당함을 밝히고, 고려와 거란의 교빙관계를 수립하기 위해서는 그 중간에 위치한 여진족의 평정이라는 선결조건을 공동으로 해결하자고 제안한 것이었다.
거란은 이런 서희의 주장을 인정하고 군사를 돌이켰으며, 고려가 압록강 동쪽 280리의 땅을 개척하는 것에도 동의하는 서신을 보내왔다.
그후 서희는 쉴 틈도 없이 북진 개척에 나서서 994년부터 군사를 이끌고 압록강 동쪽의 여진을 몰아낸 뒤, 흥화진(의주), 용주(용천), 통주(선천), 철주(철산), 귀주(귀성), 곽주(곽산) 등의 강동 6주에 성을 쌓아 이 지역을 고려의 영토에 편입시켰다. 이렇듯 3년 동안에 걸쳐 여덟 곳에 성을 쌓고 북진 개척에 힘쓴 결과, 이 때부터 청천강 이북 280리에 이르는 땅이 고려의 영토로 편입 돼 고구려 멸망 이후 처음으로 국경이 압록강에 이르렀다.
소손녕과의 담판 이후 서희는 평장사를 거쳐 종1품 태보내사령에 임명됐으나 996년(성종 15) 병을 얻어 개국사에서 오랫동안 치료와 요양을 했다. 이때 성종이 직접 문병을 와 어의 한 벌과, 말 세 필을 사원에 나누어주고 개국사에는 곡식 1천 석을 내렸다. 개국사에서 요양하던 서희는 병이 점점 위독해 져서 998년(목종 1) 57세의 한창 나이로 별세하니, 국장의 예를 갖추어 장사하고 시호를 장위(장위)라 했다. 1027년(현종 18) 성종의 묘정에 배향됐다.

아이들에게 외교관의 꿈 심어주는 곳
그동안 이천시는 우리 역사를 대표하는 서희선생의 얼을 되살리고 계승해 나가고자 1965년도에 서희선생 동상 제막, 외교부 외교안보연구원 서희동상 설치, 2015년 서희선생의 국가표준영정 지정 등 서희선생을 선양하고 업적을 연구하는 다양한 사업을 추진해 왔다. 서희테마파크는 그간 사업의 집대성이라 할 수 있다.
서희테마파크의 서희선생 일대기를 서사적인 얘기로 엮은 스토리텔링 산책로는 국내 유명작가가 30종의 조형 작품으로 형상화한 600m 정도의 길이의 산책로로, 관람객들은 산책로를 걸으면서 서희 선생의 발자취를 느낄 수 있다. 산책로를 따라 걸으면 번호가 매겨진 동상 순서대로 푯말의 짧은 이야기를 읽어 나갈 수 있다.
서희역사관 1층에는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전시실을 관람하며 문제를 푸는 서희 OX 퀴즈, 미래의 외교관 임명장 코너, 고려시대 갑옷 체험, 사진을 인화해서 가져가는 서희와 함께 찰칵, 외교 담판 영상 감상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해 학생들이 친근하게 서희 선생을 체험할 수 있도록 했다.
학생들에게 가장 인기를 끌고 있는 코너는 서희역사관에 마련된 미래의 외교관 임명 장소다. 이곳에서 학생들은 외교관으로서의 덕목을 스스로 선택해 실천 의지를 다짐하며 사진을 찍어 메일로 보내고 외교관 임명장도 받을 수 있다. 2층 추모관에는 이천 서씨 종중 200명의 얼굴과 두상 등을 바탕으로 제작돼 국가 표준영정 제95호로 지정된 가로107㎝, 세로 180㎝ 크기의 서희 선생 영정사진을 만나볼 수 있다.
추모관 앞쪽의 누각에 올라 이천 시내를 바라보며 1천 년 전 거란 80만 대군을 담판협상으로 무찌른 서희선생의 애국·보국의 정신을 되새길 수 있다.
이 때문에 서희테마파크에는 유치원생과 초·중·고교생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국군장병과 외교통상부 산하 국립외교원 외교관 후보생들이 현장체험 학습을 하는 등 대한민국 역사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또한, 서희테마파크를 활용한 ‘학교교육과정 연계 체험 프로그램’은 학생과 교사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체험 프로그램은 초등학교 3학년 ‘우리 고장 이천’ 과목과 연계해 지역 시설을 살펴보는 이천 바로 알기 체험이다. 테마파크와 효양산을 비롯해 이천과 서희 선생의 역사, 효양산 전설 찾아가기로 이뤄진다.

‘서희문화제’ 글로벌 문화축제로 발돋움
효양산에 전해 내려오는 전설 중 가장 잘 알려진 전설은 ‘금송아지’ 이야기다. 중국 황제가 아침에 세수를 하는데 대야에 금송아지가 보였다. 점쟁이는 이 금송아지가 효양산에 있다고 일렀다.
황제는 금송아지를 몰래 가져오라며 신하를 보냈다. 이천 작별리에 다다른 신하는 머리가 하얀 노인에게 효양산이 어디냐고 물었다. 노인은 “이 길을 계속 걸으면 오천 고을이 나오는데, 오천 고을을 지나 억만리를 가서 다시 이천장을 지나가면 억억다리가 있지. 억억다리를 건너면 구만리벌판이 나오는데 그 건너편에 있는 산이 효양산”이라고 말했다.
노인은 덧붙였다. “내가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 아버지께서 중국으로 장사를 가셨는데 하도 오지 않으셔서 일곱 살 되던 해에 아버지를 찾아 나섰다가 지금 이 나이가 되도록 못 만났고, 이 지팡이도 원래 두 자가 넘었는데 다 닳아서 손바닥만큼 짧아졌소.” 이 말을 들은 신하는 금송아지를 포기하고 돌아갔다는 이야기다.
이 노인은 금송아지를 지키려는 효양산 산신령이며, 금송아지는 아무도 찾지 못했다고 한다. 지금도 효양산 쌍굴 중 한 개의 굴속에 금송아지가 있다고 전해지고 있다.
매년 가을 이러한 전설과 다양한 서희 선생의 역사를 체험할 수 있었던 ‘효양산전설문화축제’는 서희테마파크 준공 이후부터는 ‘서희문화제’로 바뀌어 이천시 문화축제로 발돋움하고 있다.
‘서희의 외교, 평화를 열다!’라는 주제로 지난 9월 8일부터 9일까지 열린 2018 장위공 서희 문화제에서는 다양한 문화와 예술을 접할 수 있는 글로벌 문화축제로 진행됐으며, 외교문화체험 국제관(5개국), 우리의 멋과 맛에 취해 보는 한국관, 신나는 무료 체험(4D, 축구드론, 희귀동물전 등), 다양한 흥과 끼를 펼쳐 보는 경연대회(K-POP, 한국어 스피치 콘테스트, 도전 코리안벨, 자랑스러운 서희 노래 부르기) 등이 다양하게 펼쳐져 1만여 명의 방문객이 다녀갔다.
※ 관람시간 :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 / 관람료 : 무료 / 휴관 : 매주 월요일, 법정 공휴일 익일, 1월1일, 설날·추석 당일 / 관람문의  031-645-365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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