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부당 정론직필’을 생각해보다
‘불편부당 정론직필’을 생각해보다
  • 황선주 기자
  • 승인 2018.10.24 09:5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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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은 한 쪽으로 기울어짐 없이 공평하고, 바른 주장을 펴고 사실을 그대로 전해야할 책무가 있다.

언론인으로서 소명과 책임을 위해 노력하고 계시는 수 많은 언론인들의 노고에 존경을 표하며 감히 ‘불편부당 정론직필’에 대해 써 보고자 한다.

‘不偏不黨 正論直筆’ 즉, 어느 한 쪽으로 기울어짐이나 중정 없이 공평하고, 바른 주장을 펴고 사실을 그대로 전한다는 의미다. 언론이 가져야 할 책무를 가리키는 말이면서 기자가 드는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비슷한 의미로 생각해 볼 수 있다.

필자가 함께 일하고 있는 한 동료는 기자란 직업에 대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직업이다. 무관의 제왕이란 말을 잊지 말라. 기자를 이유 없이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분명 일부 기자와 안좋은 기억이 있거나 죄를 지은 사람일 것이다. 언론과 친하면 득이 되면 됐지, 무슨 해가 된다고 왜 이유 없이 언론인을 기피하겠나?”며 기자라는 직업에 대한 자긍심과 자존심을 내게 일깨워주곤 한다. 생각해보니 그렇다. 일부 교사 한 사람이 나쁘다고 해서 모든 교사가 나쁘다는 공식은 성립하지 않는다.

언론사 자체가 일부 힘 있는 사람들의 편에 서서 협력하거나,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쓰이게 하기 위해 사실을 왜곡하는 것은 정론직필이 아니다.

자신과 일치하는 정치적 성향에 치우쳐, 반대 세력을 이단 취급하거나 부정하지는 않았는 지 정론직필을 추구하고 있다고 스스로 착각하며 독자들을 속이려 하고 있지는 않은 지 되돌아보고 자문할 일이다.

혈연 지연 색이 유독 강한 여주·이천·양평 지역에서는 정론직필을 지킬 만큼 지조가 있고 자기 신념이 강한 성격의 기자가 특히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굴원의 <어부사>를 보면 "창랑(滄浪)의 물이 맑으면 내 갓끈을 씻으면 되고, 창랑(滄浪)의 물이 흐리면 내 발을 씻으면 되는 것을!" 하며 어부가 굴원이 여세추이하지 않고 끝까지 고고함을 안타까워하는 구절이 나온다. 속세에 연연해하지 않고 끝까지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던 굴원의 결백, 떳떳함, 고고함까지는 아니더라도... 굴원의 고고함을 조금이나마 닮은 기자야말로 지역사회에 쓴소리를 던져 상생의 가치를 추구하고 지역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는 날카로운 펜을 든 자가 아닐까.

적어도 악인(惡人)을 선인(善人)으로 선인(善人)을 악인(惡人)으로, 사인(私人)을 공인(公人)으로, 공인(公人)을 사인(私人)으로 쓰지는 말아야겠다.

분명히 시시비비(是是非非)가 존재하는데도 “내 친구니까, 내 친척이니까, 동창의 형이나 누나야, 우리 동네 사람이니까.” 라는 이유 등으로 제대로 된 말을 전달하지 못하거나, 말을 흐린다. 그 것은 곧 잘못된 행동을 한 사람이 불특정 다수에게 계속적이고 반복적인 실수를 하게 되는 데 문제가 있다. 주변에서 아무런 질책을 받지 않고 묵인되어 넘어가니, 소수의 옳은 소리 하는 사람이 오히려 왜곡되어 다수의 잘못된 목소리 앞에 주눅 들거나 묵인하게 된다. 상식이 비상식이 되고, 비상식이 상식으로 되는 악순환의 지역 환경에 노출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정론직필이고, 지역 언론사와 언론인이 먼저 해야 할 책무와 역할이 아닌가 싶다.

정론직필을 지킬 만큼 소신과 지조가 있고 <어부사>에 등장하는 굴원처럼 자기신념이 강한 성격의 기자는 물론 주화입마(走火入魔) 할 수 있다. 즉 자신의 색깔이나 주장이 강하게 나타나 사실에 입각한 기사를 쓰지 않고 언론이 잘못된 여론을 지역 사회에 조장해 오히려 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어부사>의 굴원과 어부란 인물의 중간 쯤에서 펜을 들어야하니 정론직필은 정말 어려운 것 같다.

어부는 "성인(聖人)은 세상 사물에 막히거나 얽매이지 않고 세상을 따라 변하여 갈 수 있어야 합니다. “며 세상과 속세와의 타협을 얘기하고, 굴원은 " 새로 머리를 감은 사람은 반드시 관(冠)을 털어서 쓰고, 새로 목욕한 사람은 반드시 옷을 털어서 입는다고 하였다. 어찌 결백한 몸으로 더러운 것들을 받아들일 수 있겠나. 차라리 소상강(瀟湘江) 강물에 달려들어서, 물고기 뱃속에 장사지내겠다.”며 결백을 주장하며 세속의 먼지 쓰기를 완강히 거부했다.

어부의 타협과 굴원의 고고함 그 중간에서 기사를 쓰면 적당할 것 같아 전국시대 초나라 굴원 이야기를 예로 들어봤다.

언론인은 축적된 정보를 바탕으로 하여, 반드시 사실에 입각한 기사를 쓰되, 기자 개인이 판단하지 않고 그 중간에 서서 독자가 판단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것이 언론이 추구하는 정론직필의 정의가 아닐까한다.

이제 <새연합신문>이 여주·이천·양평 지역언론의 향도가 되어 지역사회의 옳고 그름을 위한 대변자 역할을 하는데 있어 조금이나마 앞장서고자 한다. 시·군 지역민들의 소수의 목소리라도 귀담아듣고 당론과 이해관계를 떠나 사실에 입각한 기사를 쓰려 노력하고 보다 차별화된 정보로 정확하고 다양한 정보를 위해 열심히 뛰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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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정 2018-11-29 15:09:52
우와~~소신있는 기자님!! 화이팅~~!! 맞는 말임에도 행동이 따르지않는..우리지역..우리나라.. 함께 살기좋은 세상 만들어봐요^^